익산시민 유 성 무

<삼국지연의>의 묘미 중 하나가 관우의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 대목이다. 한 때 유비가 조조에게 대패를 하고 원소에게 몸을 의탁했다. 유비의 가족들 때문에 조조에게 잡히는 몸이 된 의리의 화신 관우는 원소와 조조의 전쟁에 나섰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서 조조에게 보답하고 유비를 찾아 떠나기 위해서였다. 관우는 원소의 명장인 안양과 문추를 청룡언월도로 베어버리고 관도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조조가 중원의 패자가 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졸지에 명장 둘을 잃고 분개한 원소는 유비에게 그 죄를 물으려고 했다. 이에 유비는 원소에게 안양과 문추는 기상 좋은 사슴이고 관우는 사나운 범이니 누구를 얻고 싶은가를 물었다. 원소는 당연히 사나운 범을 얻고 싶다고 말했다. 유비가 원소에게 있다는 소식을 들은 관우는 결국 조조의 극진한 대우를 뒤로 하고 유비를 찾아 나섰다. 그 과정에서 조조의 장수 여섯 명을 참하면서 다섯 관문을 돌파하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오관참육장이다.

자고로 전쟁은 병사의 숫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면서 적을 제압하는 맹장이 필요한 법이고, 죽기를 각오하고 적진에 뛰어드는 선봉대장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특히 사지에 처했을 때야말로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용장이 있어야 한다. 전쟁은 본질적으로 지략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런 지략도 용맹으로써 병사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장수가 없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이 이상하다. 정청래, 강동원에 이어서 이해찬 등 대여 강경파들이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다. 김종인의 당권 접수 이후 오르던 지지율도 정청래 공천배제 발표 이후 5% 급락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최전방 공격수를 자임하고 그 누구보다 할 말을 다했던 정청래의 낙천에 지지자들의 실망이 줄을 잇고 있는 모양새다. 여기에 이해찬까지 배제시킨다고 하니 향후 지지자들의 움직임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우는 시스템 공천도 좋고, 혁신 공천도 좋다. 공천이란 것이 유권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이기기 위한 것이니, 그런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 공천의 목적임이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 지지자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총선 승리? 대선 승리? 경제민주화?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야권이 사분오열된 야권의 선거구도에서 총선 승리를, 40%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보이는 보수진영과 맞서 대선 승리를, 기득권이 구조적으로 견고화된 경제현실에서 경제민주화를 이룰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유권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야권이 입만 열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말하는 언론환경 속에서, 지리멸렬한 야권의 꼴에 속 터지는 지지자들이 지금 원하는 것은 진정성과 야성이다. 거대여당에 맞서 목이 터져라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선명성과 투쟁력이다. 소아적 정치이념을 넘어서 공정한 룰이 통하는 세상을 열기 위해 단합하는 모습이다. 비록 지금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지지자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이런 믿음을 실천할 것으로 지지자들이 인정할만한 사람들을 선거 전면에 내세우는 것 밖에 그 무엇이 있겠는가? 지지자들이 원하는 것은 고상 하고 품격 있는 언행과 논리적인 정책으로 치장한 기상 좋은 사슴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정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행동도 불사하는 사나운 범이다. 무리지어 다니는 사슴이 아니라, 반대편의 집중포화로 만신창이가 될지언정 약자와 손을 맞잡고 불의에 항거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맹수다.

그런데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범을 몰아내고 사슴 떼만으로 공룡과 맞서 싸우겠다는 것이다. 관(棺)을 메고 관우와 일전을 벌인 방덕과 같은 맹장 없이 병사들에게 결사항전 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렇게 해서 어떻게 지지자들의 가슴 속에 결사항전의 불꽃을 피우겠는가? 아니, 지지자들이 질 것이 확실한 싸움에서 앞장 서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신 차려야 한다.

정청래와 이해찬 같은 맹장이 있다면 몰라도, 없다면 지금이라도 잘못된 결정을 철회하기 바란다. 지금은 사소한 허물을 논할 때가 아니다. 허물이 있더라도 장공속죄(將功贖罪), 즉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선거에서 이김으로써 잘못을 덮도록 기회를 주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사나운 범을 싸움터에 풀어놔야 한다. 지금은 지지자들을 모아서 사지에서 벗어날 때다. 등 돌린 지지자들을 다시 붙잡아 참패를 면하는 것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