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약사

와이파이가 되는 호텔에 들어오면 휴대폰부터 열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쌍둥이를 임신한 며느리는 혼자 앉기도 일어서기도 힘들어 한다. 오늘 내일 하는 것을 보고 여행을 왔는데 오늘도 출산을 했다는 문자는 없다.

쿠스코와 마추픽추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리마로 돌아왔다. 여행도 어느새 중반을 넘었다. 일주일 만에 한식을 먹었다. 지금까지는 여행을 하려면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먹었다면 오늘 저녁은 맛이 있어서 행복을 느끼며 먹었다. 얼굴에 화색이 돌고 감정도 많이 밝아졌다.

이 기분을 살려 호텔 앞의 시장으로 산책을 나갔다. 입구는 조그맣고 허름해 보였는데 들어가 보니 중앙에 광장이 있고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여러 가게들이 있다. 과일이나 살까하고 페루 돈을 좀 바꾸었다. 10달러는 대략 35솔이다.

광장에 들어서니 음악이 흘러나왔다. 소리 나는 쪽을 보니 십 여 명의 아이들과 그 애들의 할머니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젊은 애기 엄마 두 명이 어울려 제 각각의 몸짓으로 온 얼굴에 웃음을 지우며 춤을 추고 있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갔다. 그들 무리 속에는 걸음마를 겨우 띄었을 것 같아 보이는 어린 아이가 그 음악의 리듬을 아는 지 몸을 흔드는 듯 마는 듯 기우뚱 기우뚱 하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그 춤바다에 합류하고 말았다. 나는 그 어린 아이의 앞에 서서 그와 보조를 맞춰가며 몸을 기우뚱거렸다.

오십쯤 되어 보이는 애들의 할머니가 아이들을 모두 내 앞에 세우고 같이 춤을 추라고 하는 것이다. 외국인에 대한 배려인지 음악소리가 더 커지고 아이들이 나를 빙 둘러쌓다. 제일 어린 그 아이는 조금 추다 서 있고 또 익숙하면 다시 살짝 흔들었다. 모두 하나가 되었고 우리는 때때로 소리도 질렀다.

나도 흥에 겨워 소리를 내며 춤을 추니 애기 엄마가 근사한 춤사위를 나에게 보여주며 따라해 보라고 했다. 내가 어떻게 격정적이고 열정적이고 디테일하게 허리를 움직이는 남미의 춤을 따라할 수 있겠는가. 그저 보기 좋은 웃음만 보여 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대뜸 나를 꼭 안으며 더 멋진 춤을 보여준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한국을 좋아한단다. 나도 페루를 좋아한다며 내 방식의 춤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광장은 축제의 장이 되었다.

음악이 끝나고 아주머니가 잉카콜라를 내게 권했다. 잉카콜라는 노란색으로 코카콜라보다 톡 쏘는 맛이 조금 덜한 그들의 전통 음료이다. 겨우 아는 스페인어 그라시아스를 반복하며 반가이 받아 마셨다. 나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어 맥없이 주머니만 만져보다 고산증에 대비해 준비해 간 사탕이 생각났다.

호텔로 돌아와 반쯤 남은 사탕봉지를 들고 광장으로 다시 갔다. 뜬금없이 생일축하 노래가 울렸다. 그들 뒤에 서서 나도 노래를 부르며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사탕을 생일상에 내놓았다. 제일 어린 아이 생일이란다. 조금 전의 춤판은 생일파티의 식전행사였던가 보다.

생일 세레머니인지 사탕을 한 주먹씩 뿌렸다. 세 번 뿌리는 것으로 보아 그 아이가 세 살인 모양이다. 사탕을 주우러 아이들이 우르르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이 꽤 생동감 있다. 마치 무슨 퍼포먼스 같다.

케이크를 자르더니 나에게 먼저 준다. 오랜만의 한식으로 배가 불렀지만 고맙게 받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몇 점을 먹었다.

그 아이를 내 손녀라도 되는 양 번쩍 들어 안았다. 애기 엄마가 사진을 찍겠단다. 아이도 낯선 내 품에서 울지 않는다. 애기 엄마가 이빨이 다 보이도록 웃으며 박수를 치고 좋아했다.

과일 사 먹으려고 바꾼 페루 돈 한 장을 아이 손에 쥐어 주었다. 아이가 무슨 돈을 알까마는. 할머니의 얼굴도 환해지며 입이 귀에 걸렸다. 아이보고 돈을 흔들라고 한다. 돈을 흔드는 아이와 나는 또 모델이 되어 사진 몇 방 더 찍혔다.

아이를 내려놓고 쪼그리고 앉아서 아이의 키 높이에 맞춰 가슴으로 안았다. 등을 가만가만 도닥이며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커서는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아는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빌어 주었다.

이방인인 나를 반갑게 맞아 주고 함께 춤을 추고 또 생일 파티를 즐길 수 있게 해 주고 그들의 사는 모습을 보여줘서 정말 고마웠다.

3일 동안 안데스의 정기를 듬뿍 받았다. 그래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그 만큼 겸손해질 수 있기를 다짐하였다. 이런 내 마음이 그 아이에게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졌을 것이라 생각하니 오늘 저녁이 한없이 기쁘고 이번 여행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일-생명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특히 어린 생명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여행 내내 며느리의 순산과 태어날 손자 손녀의 건강이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행 기간이 며느리의 출산일과 겹치게 될 것 같아 면목이 없다. 원 예정일은 한 달 정도 여유가 있지만 쌍둥이라서 애기의 상태를 봐가며 수술 날을 잡는다고 한다. 행여 여행기간에 출산을 하게 될까봐 조마조마 하는 마음이다.

아들이 수술 날이 3월 10일로 잡혔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 후다. 순리대로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제 날 수를 거의 다 채우고 나오는 쌍둥이들은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다.

아이들과 춤을 추며 노는, 아이를 보듬고 뻐드렁니를 다 내놓고 웃는, 마추픽추에서 두 팔을 벌려 안데스의 정기를 받는 사진을 며느리에게 카톡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