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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좋은 날

윤복순 윤약국 약사

수술실에서 나왔는데 분간을 못하겠다는 전화가 9시 넘어서야 왔다. 출입문을 못 찾겠단다. 한 쪽 눈을 가린데다 긴장이 풀려서 일 것이다. 주위에 물어서 택시타고 금방 갈 테니 기다리고 있으란다.

한 집에서 15년을 살다보니 수리가 필요했다. 우리 집이 아파트 뒷동이라서 겨울이면 햇볕이 잘 들지 않았다. 겸사겸사 앞 동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집을 옮기니 손 볼 곳은 손을 좀 봐 들어가기로 했다.

이사 갈 곳도 분양받았을 때 그대로여서 여기저기 보수가 필요했다. 남편은 인테리어업자에게 맡기자고 했고 나는 목사님이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목사님 형편을 알기에 이왕이면 목사님께 돈을 드리고 싶었다. 목사님이 전문가는 아니다.

3~4년 전 목사님은 돈이 모자라 교회와 이층에 살림집을 직접 지었다. 물론 기술자가 필요할 땐 그 부분만 전문가를 불렀다. 그런 경험이 있어 자재는 어느 것이 좋고 또 어디서 사는가와 필요한 전문가 등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목사님이 총 감독을 해주니 마음이 놓였는데 남편은 일일이 목사님을 따라 다니며 조수를 해야 하니 힘이 드는 것 같았다. 남편과 목사님은 찰떡궁합이라서 큰 소리 한 번 없이 일을 잘 한다. 우리 포도밭의 비닐하우스, 작업장, 방, 저온창고 등을 지을 때도 전문가 옆에서 둘이 보조로 손을 맞췄었다.

집은 화장실부터 전등까지 모두 손을 봐야 했다. 목사님은 남편과 둘이서 할 수 있는 것은 직접하고, 방수공사 및 타일 붙이는 것 등 전문가가 필요할 땐 전문가를 부르면서 꼼꼼하게 잘 해 주었다.

도배는 전문가를 부르고 몰딩은 직접 한다고 했다. 몰딩을 먼저 해 놓아야 벽지를 바른단다. 기술자가 아니라서 좀 더디게 일이 진행되었다. 하루에 다 끝내지 못 해 다음날 오전 까지 했다. 도배는 몰딩이 된 곳부터 했다.

오늘도 남편은 목사님 몰딩작업을 도와주기 위해 뒤따라 다녔다. 목사님이 작업을 하면서 타카를 쏘았는데 잘 못 맞아 시멘트벽에서 반사적으로 튕기면서 타카핀이 남편 눈에 박힌 것이다.

남편이 한쪽 눈을 손으로 가린 체 약국에 왔다. 장갑에 피가 묻어 있다. 침착하게 살펴보니 눈동자는 괜찮았다. 심각해 보이지 않아 혼자서 가까운 안과에 갔다. 조금 뒤, 의사가 소견서를 써 주며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택시타고 가는 중이라고 전화가 왔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다른데도 아니고 눈이잖은가. 순간 후회가 몰아쳤다. ‘전문가에게 맡겼어야 했는데’ 힘이 탁 빠져 주저앉았다. 입이 말랐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별 일 아니어야 할 텐데, 별 일 아니어야 할 텐데’, 어느새 내가 주문처럼 외우고 있었다.

전화가 울려 받으니 남편이다. 그 안중에 도배하는 사람들 점심 좀 사 주란다. 정말 정신도 매화다. ‘지금 당신 눈이 중요하지 밥이 문제야, 눈동자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 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려 노력했다.

1시간이 십년 같았다. 일하는 아주머니한테 점심 먹게 내려오시라고 전화를 했다. 벌써 자기 집으로 밥 먹으러 갔단다. 자기네 걱정 말고 아저씨 눈이나 신경 쓰라고 한다. 그들도 너무 놀라서 일이 잘 안되었단다.

목사님은 어떨까. 얼마나 놀랐을까. 목사님의 마음고생을 생각하니 남편 눈의 위기상황 만큼이나 내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심호흡을 해 보았다.

목사님께 전화를 했다.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켜드리고 싶었다. 막 전화하려고 했다며 금방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단다. 다행이 망막, 각막 아무 이상이 없고 흰자위가 찢어져 꿰매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단다. “목사님, 우리 오늘 대운 터졌네요. 얼마나 놀랐어요?”

입원하라고 했는데,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니 오후 5시 수술 시간에 맞춰 다시 오라고 했단다. 안심이 되었다. 응급상황이면 퇴원을 시키겠는가. 물론 수술이 남아 있지만 보는 데는 지장이 없을 거라는 말에 감사했다.

남편 눈은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 몇 mm의 간격으로 눈동자를 피해 지나갔다. 목사님이 평생 죄인으로 살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목사님이 불과 몇 시간 만에 팍 늙어 보였다.

남편 혼자서 5시 수술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갔다. 1시간이면 될까 하고 기다리는데 6시 반쯤, 앞 사람도 아직 수술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며 내가 기다릴까봐 전화한다고 했다. 약국 문을 닫고 따라갈걸 그랬나보다.

수술은 잘 되었다며 내일 수술 부위 확인하게 다시 나오라고 했단다. 남편은 며칠 동안 고생을 할 것이다. 예민한 부위를 꿰맸으니 통증은 어떨 것이며 또 부기로 눈 뜨기가 얼마나 불편 하겠는가. 하지만 시간만 지나면 다 나을 수 있으니 그 정도의 어려움이야 나는 웃으며 견디련다.

살면서 예기치 않은 사고가 생긴다. 그래도 그 사고가 불행 중 다행일 때가 더 많다. 그 힘으로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얼마나 감사한 하루인가. 정말 운수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