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투극이나 정신분열증 일으켜 행패부리는 거 아니니 참아주세요 잠시만, 아주 잠시만 수채통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용돌이에 힘이 빠져요 혼란스러워요 견딜 수 없어요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 방향이나 시대감각도 없어요 심지어 내 자신이 낯설어 보여요 아무리 똑바로 걸어도 자꾸 엉뚱하게도 틀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러지 말자고 이러면 안 된다고 정신 차리려고 벽에 머리를 쾅! 쾅! 어찌나 세게 찍었던지 서른 세 바늘을 꿰매야했어요 한 땀 한 땀 지금은 이렇게 누워 가만있을 테니까, 한동안 잠잠히 있다 보면 정신이 맑아져요 서른 세 바늘을 꿰매고 나서도 내 자신을 알지 못했어요 그렇다고 지금 다시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알려고 애쓸 생각 없어요 세상 사는데 그딴 거 아무 필요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조금만 참아주세요 차츰 알아가겠지요 이 소용돌이가 걷히는 시간은 오래가지 않아요 가만 날 내버려두면 돼요 어렸을 때부터 지독하게 떨어지지 않는 어지럼증, 난 운동장에서 쓰러지진 않았어요 운동장조회가 있던 날이면 아침 햇빛은 왜 그리 좋았던지 말렸더라면 백송이 분홍나팔꽃 하지만 쓰러지지 않으려고 참 많은 애를 써야만 했어요 끝까지 참아내는 거 정말 고역이어요 올라오는 멀미 같은 걸, 그걸 올라오지 못하도록 연신 침을 삼켜야하고 자꾸 검은 색으로 바뀌려는 사물을 어떻게 든 잠기지 않도록 발가락을 꼼지락거려야했고 입술을 깨물기도 했고 남들 눈에 띄지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야 했어요 누구를 미워하는 거 그때 알았어요 나는, 누구를 미워하는 걸로 생존가능 후유증. 내가 나를 감당하지 못하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까지도 미워하게 됐어요. 하지만 미워하는 거 정말 힘들어요 차라리 까무러치고 마는 게 누구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어요 참아내는 거 바보짓이에요 지금까지 살아온 힘도 증오였나봐요 이 시시한 삶에 좁은 통로를 뛰쳐나온 만화경 속 꽃잎들 증식하는 황홀-분홍 나팔꽃 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