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와 광해군 두 임금을 모시며 좌의정에 이른 심희수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영의정을 지낸 십연원의 동생 심봉원의 손자다.

양반 가문의 후손인 그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방탕한 소년이 되었다. 하루는 권세 있는 재상의 집에서 잔치가 벌어졌는데 심희수는 술과 음식을 마구 마시고 먹어댔다. 주위의 사람들이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이때 춤을 추던 기생 일타홍一朶紅이 그에게 접근해 함께 집으로 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소실로 들여줄 것을 청했다. 이에 심희수의 어머니는 집이 가난하여 견디기 힘들 것이라며 물리쳤다. 하지만 일타홍은 심희수의 기상이 범상치 않으니 자기가 그를 한 번 감화시켜 훌륭한 사람을 만들어 보겠다고 애원했다.

끝내 허락을 받은 일타홍은 그 날로 기생을 그만두고 심희수를 서당에 보내고, 돌아오면 밤늦도록 함께 공부했다. 또한 홀어미에게도 극진했으며, 양반집 규수를 골라 적실 부인을 삼게 하고 추호도 질투하지 않았다.

심희수가 마음을 잡고 열심히 공부하여 선조 3년에 스물두 살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고 2년 뒤에는 별시 문과에 급제했다. 그 후 심희수가 이조낭관의 벼슬에 있을 때 안타깝게도 일타홍은 심희수의 손을 잡고 숨을 거두었다.

심희수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주로 파천하는 선조를 호종했으며, 서울로 돌아와서는 이조판서를 거쳐 좌의정이 되었다.

방탕한 소년에서 좌의정이 되기까지 혼심을 다한 일타홍이 없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선비란 학식은 있으되 벼슬하지 않은 사람 또는 학문을 닦는 사람의 예스러운 말이라고 국어사전에 기록되어 있는데, 오히려 기녀 일타홍이 선비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