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약사

여름이 맥없이 가고 있다. 올 때 과속하더니 뒷심이 달려 가을에게 쉬 잡히고 만 것일까. 아침저녁으론 쌀쌀한 기운마저 든다. 이렇게 허망하게 더위가 가다니, 세월의 빠름에 허허롭다. 가는 시간을 붙잡듯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본다.

즐거움 

언니가 옷을 세 개나 보냈다. 하나나 기대했는데. 작년 늦은 봄 언니가 경옥고를 구해달라고 했다. “광주에는 그 한의원이 없어? 꼭 익산에서 사야 돼?” 언니는 익산이 본산이니 익산에서 구했으면 좋겠단다. 가까이 있는 그 한의원에 전화해 포장단위며 가격 등을 알아보았다.
조카가 중국 상해지점으로 발령을 받아 나갔는데 음식 때문인지 바싹 말라 그거라도 보내줬으면 한단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경옥고를 많이 드셨다. 언니가 어찌 그 때 생각이 났다며 그 제품으로 익산에서 사고 싶단다.
뒷북을 잘 치는 나는 한의원에 점심시간에 나가마고 하고서야 교무님께 부탁하면 좀 싸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버뜩 들었다. 1년 치라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덕분에 직원가격으로 할인 받아 살 수 있었다.
어느새 일 년이 지나고 조카가 여름휴가로 일주일동안 나왔다. 그 가격으로 또 샀으면 좋겠단다. 교무님이 흔쾌히 사 주셨다. 언니가 교무님께 뭐라도 대접을 하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그 때 교무님이 옆에 계셨다.
“언니, 성은 ‘느 언니한테 니 옷이나 비싼 걸로 하나 사달라고 해라’ 그러네”  교무님은 당신이 나한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들은 언니가 이렇게 옷을 세 개나 사 보낸 것이다.
“언니 하나만 사지 왠 세 개나?”
“응, 회원가격으로 샀어. 여름옷은 비싸지 않아. 안 맞으면 바꿔 입어라.”
“아니야 색깔 다 예뻐. 동네사람들에게 언니가 사줬다고 자랑하면서 여름 내내 잘 입을게.” 이렇게 여름이 시작 되었다.    

만남

복더위에 친정식구들과 복달임이나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언니네 동생네에 전화를 넣어 보았다. 형제지간에 만나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어디 있냐며 큰언니가 제일 좋아했다. 큰언니 나이가 있으니 만날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기회를 만드는 것이 좋다. 덥다고 춥다고 애들이 수험생이라고 핑계 대다 보면 형제간도 멀어진다.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데 덜컥 날을 잡았다.
드디어 그날, 큰언니가 어떤 아주머니랑 왔다. 친정동네에서 같이 자랐던 큰언니 친구로 나도 낯이 익다. 둘이는 가끔 통화만 나누는데 친정식구들이 모인다고 하니 오고 싶어 해서 데리고 왔단다. 나이를 먹으면 고향이 고향사람이 그리운가 보다.
그 분은 우리들 만날 생각에 잠도 설치고 가슴도 설랬단다. 진즉부터 기차표를 구해놓고 오늘을 기다렸노라고 했다. 칠십대에게 친정이 있겠냐고 묻는다. “느 언니나 복이 많아 동생들이 이렇게 불러주지.” 그 언니는 막내라서 친정붙이들이 다 돌아가셨단다. 남편과도 사별했다고 한다.
이불빨래에 청소, 제습기 돌리는 것 까지 걱정도 많았는데, 형부들 올케들 제랑들 모두 좋아라했다. 큰언니랑 작은언니랑 어릴 적 얘기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라 그 언니도 우리 집에서 같이 잤다.

감사

사모님께 더위에 잘 지내시냐고 문안 전화를 드렸다. 어느 날 어느 날이 좋으니 익산에 내려오시라고 했다. 생각해 보겠다더니 우리 부부보고 올라오란다. 사모님과는 20년 넘게 가까이 지낸다. 남편이 합참본부에 근무할 때 모셨던 과장님 사모님이시다. 나와는 띠동갑이다.
우리집에서 자고 부안 쪽으로 조개를 잡으러 가려고 했는데 칠십 중반인 그들에게 장거리 운전은 부담스러운가 보다. 우리가 올라가면 사모님이 고생을 한다. 살림 솜씨가 좋으면 몇 가지 시골반찬을 준비해 가면 좋을 텐데 나도 얻어먹고 사는 신세라 빈손으로 간다. 사모님을 위한 조그만 선물로 무엇이 좋을까 행복한 고민이나 해야겠다.
사모님과 과장님이 건강해서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서울로 불러줘서.

기도

딸아이가 입원을 했다. 출산까지는 근 두 달이 남았는데 쌍둥이라서 네 번째라서 조산할 우려가 높단다. 정기검진 받으러 갔다가 예상치 못한 입원에 딸과 사위의 상황이 어렵게 되었다. 당장 애들 셋을 어떻게 할 것인가.
딸이 나와 통화하는 중에 큰 소리로 즈 남편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다. “소영아, 짜증내지마. 아무나 다섯 아이의 부모가 되니? 엄마 아빠도 못해서 둘 밖에 안 낳았잖아. 이건 대통령도 못하는 일이야. 너희들은 대단해. 대단한 일 하는 사람은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지. 짜증도 습관이다.” 사위에게도 전화해서 똑같이 말해줬다.
손자 손녀들은 시댁에 보냈단다. 손녀들은 유치원생이라 안 보내도 되지만 손자는 초등학생인데 결석을 한하고 시킬 수도 없고 걱정이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묘책을 찾고 있는데 사위가 간병휴직을 낸단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죽으란 법은 없는가 보다.
딸은 태아들의 체중이 적어 한 달 정도 입원했다가 출산할 거란다. 태아나 산모의 상태가 안 좋아서가 아니라 누워있으라고 입원한 것이니 별 걱정은 없다. 딸은 병원으로 휴가 갔다고 생각한단다. 돈이 좀 드는데 어차피 휴가비는 드는 것 아니냐고 한다.
딸아이가 휴가 맘껏 즐기고 정상으로 분만 잘 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