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기 익산 희망정치
시민연합 대표

사랑하는 이혜심 목사님, 또 다시 가을이 왔습니다. 하늘은 한없이 푸르고 낙엽은 붉게 물들 준비를 마쳤습니다. 

너무도 목사님이 그리워, 오늘 밤은 별빛을 따라 달님과 함께 서성이고 있습니다. 가을로 가득 찬 하늘엔 유난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달은 맑고 크고 차갑습니다. 수확의 계절, 풍요의 계절이 왔건만 나는 왠지 모를 쓸쓸함에 한쪽 가슴이 아려옵니다.

목사님,  하늘나라로 가신 목사님을 지리산 자락 어느 나무 아래 모셔드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산을 내려온 지가 벌써 한 달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연약해질대로 연약해지신  목사님을 보면서도 마지막까지 죽음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의 암 투병을 이겨냈듯이 이번에도 반드시 병상에서 일어나 밝은 미소와 호탕한 웃음을 들려주시리라 굳게 믿었습니다. 때문에 목사님의 죽음은 더욱 충격이고 아픔이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과 함께 했던 추억과 시간들을 생각하니 기쁘고도 아픕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목사님이 익산YWCA 초대 총무를 하시며 송학동에 교회를 개척하셨던 때입니다. “경상도 울진 출신으로 부산에서 활동하셨던 목사님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전라도 익산에 오셔서 저를 만난 것은 모두 주님의 뜻이다.”라는 나의 말에 동의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목사님은 늘 저에게 “크리스챤이 추구해야 할 것은 거룩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찰하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항상 민감할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사랑으로, 오직 말씀으로 살 것을 강조하시며 언제나 주님의 섭리 가운데 거할 것을 거듭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또 목사님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언제나 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베푸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다가 정작 자신은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에 감사입니다.” 라고 항상 말씀하시던 당신은 언제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습니다.  당신의 50평생은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목사님, 당신은 나에게 하나님 나라를 함께 꿈꾸던 동역자였고, 상담자이자 가장 열렬한 후원자였습니다. 또한 신앙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주신 스승이었습니다.  때로는 사소한 의견의 차이로 갈등도 있었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이마저도 나에게는 가르침 이었습니다.

늦었지만 우리 부부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못 다한 고백을 하고자 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이제 더 이상은 아프지 않고 주님의 품 안에서 안식하고 계실 것을 소망하고 믿습니다.

먼 훗날 때가 되어 나도 그 곳에 가면 우리 손을 잡고 한바탕 웃어요.

목사님, 그 날이 오기까지 저는 이 땅에서 목사님과 함께 꿈꾸었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정진하겠습니다. 그 분의 뜻이 이 땅에도 이루어지는 나라 건설을 위해 나아가겠습니다.

사람이 천하보다 귀한 세상, 정의와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포도나무아래서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나라를 위해 힘쓰고 애쓰겠습니다.

목사님, 이제 편지를 마무리하며 지난 5월에 병상에 계신 목사님께 보내드렸던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다시 보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5월의 시 >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5월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

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 속에 퍼 올리게 하십시오

말을 아낀 지혜 속에 접어 둔 기도가
한 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5월
호수에 잠긴 달처럼 고요히 앉아
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오

은총을 향해 깨어 있는 지고한 믿음과
어머니의 생애처럼 겸허한 기도가
우리네 가슴 속에 물 흐르게 하십시오

구김살없는 햇빛이
아낌없는 축복을 쏟아 내는 5월
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오
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빛을 향해 눈뜨는 빛의 자녀 되게 하십시오(이해인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