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민 유 성 무

중국 전국시대 병법가 손빈은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孫武)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는 동문수학했던 방연의 모함으로 불구가 된 후 위나라를 떠나서 제나라로 망명했다. 그는 제나라 장군 전기(田忌)의 빈객이 됐는데, 당시 귀족들 사이에 마차 경주가 성행했던 모양이다. 게임 방법은 양쪽이 각기 다른 말이 끄는 마차로 경주를 해서 3판 중 2승을 한 쪽이 판돈을 갖는 것이었다.

손빈이 살펴보니 마차를 끄는 말의 경주능력은 상중하로 차등이 있었는데, 양쪽의 같은 등급 말들은 경주능력에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에 그는 전기에게 필승전략을 제시했다. 전기의 가장 느린 말과 상대의 가장 빠른 말을 경주시키고, 전기의 중간 말과 상대의 가장 느린 말이 달리게 하며, 전기의 가장 빠른 말과 상대의 중간 말이 경주하게 했다. 그 결과 전기는 2승 1패로 게임에서 이기게 됐다.

이런 손빈의 전략은 몇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성공할 수 있다. 양쪽에서 출전시키는 말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대진순서에 맞춰서 이쪽에서 출전하는 말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상대가 이쪽의 전략을 파악하고 게임의 규칙을 바꾸면 성공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지피지기(知彼知己)로 상대적 우위를 점함으로써 승리를 쟁취하는 그의 전략은 탁월했다.

손빈의 일화를 들먹이는 이유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의 꼴을 보면서 그들에게 수권 의지와 가능성이 있는지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새정연의 문제와 해법은 당명에 그대로 나타나있다. 새정연이 새정치를 하고 있는지, 민주적 정당인지, 구성원 사이에 연합이 잘 되고 있는지를 보면 앞으로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 그들의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고 보인다.

새정연은 새정치를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여러 번 생각해봤는데 도저히 답을 모르겠다. 새정치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문자 그대로 보면 과거와 다른 정치라는 의미인 것 같은데, 그에 대한 비전과 실천방법도 모호하고, 새정연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에서 새로움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마치 ‘창조’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는 잡다한 말처럼 말이다.

새정연은 민주적인 정당인가? 당권 및 당론 결정의 실질적ㆍ절차적 민주성은 말할 것도 없으며, 무엇보다 국민과 당원의 뜻을 받들어서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새정연 출범 이후 그들이 보여준 꼴을 보면서 그들이 민주를 논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결정적인 사건사고 때마다 민의 대변을 위한 투쟁은 고사하고, 당내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허구한 날 서로 치고받는 그들에게서 ‘민주’는 실종된 지 오래다.

새정연은 연합인가? 새정연은 대선 패배 이후 내홍을 겪던 과거 민주당과 안철수계가 모여서 출범했다. 연합이라면 목표의식을 공유하면서 최소한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는 일사불란한 공조체제를 갖춰야 한다. 그들이 여러 사람들의 우려 속에서 연합한 명분은 거대여당에 맞서 새로운 정치를 통해 민주사회와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패를 나눠 공천권을 둘러싼 지도부 끌어내리기에만 혈안이 돼있으니, 이를 두고 어찌 연합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돌아가는 모습이 이러하니 세월호 참사부터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까지 야권이 정국을 주도할 숱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는 연전연패하면서 지지율은 바닥을 기고 있다. 새누리당의 입장에서 볼 때, 새정연과의 게임에서는 손빈과 같은 전략도 필요 없다. 그저 보수를 집결시키기만 하면 끝나는 게임 구도를 새정연이 스스로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양쪽 다 새로운 정치는 없다. 새누리당은 보수층에게라도 충실하지만, 새정연은 내부의 정파적 이해관계에만 몰두한다. 그래서 산토끼를 얻는 것은 차치하고 집토끼마저 잃고 있다. 새누리당은 정권을 지켜야 한다는 공통과제 앞에서는 화학적으로 결합하지만, 새정연은 정권획득이 아닌 당권쟁탈만 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최소한 2승 1패로 이길 수밖에 없는 구도다.

어느 정치인이 여당의 오만과 독주는 무능한 야당의 책임이라고 했는데, 작금의 새정연을 보면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새정연에게 총선과 대선 승리를 기대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보인다. 오히려 진보진영의 세력결집에 버거운 짐만 될 뿐이다. 차제에 새정연이 뼈를 깎는 반성을 통해서 국민을 위한 정당으로 환골탈태하든지, 아니면 각자 본색을 드러내고 제 갈 길을 가기 바란다. 선거에서 지는 것은 용납될 수 있다. 하지만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결기도 지략도 없는 정당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