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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과 인간 상호성

협동사회경제연구소 대표

권 태 홍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오래전부터 들었던 이 질문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보면서 다시 떠올랐다. 박근혜는 선한 의도였다고 끝까지 강변하고 지금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멈추지 않고 있다. 박근혜가 탄핵되자마자 세월호가 떠올랐다. 이렇게 쉬운 일이었던가 유족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박근혜의 표정을 보면 정말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는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 내면의 진실이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본인도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악순환을 거듭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되지 않아 오랜 지인이던 가까운 대학교수 한 분이 장탄식을 하시며 전화를 한 적이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없어졌었던 승진 촌지 관행이 이명박 취임 이후 곧바로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항의하다가 해직의 위기에 몰렸다면서 세상을 잘못 봤다고 회한 어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사회 구석구석이 그리했을 것이다. 국민들이 무시되고 사회적 약자들이 천대받고 정경유착의 몸통들만이 큰소리치고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반칙과 특권이 당연시되는 시간들이었다. 박근혜가 탄핵 구속되고 그 관련자 몇 사람이 구속되는 걸로 국정농단 사태가 해결되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제는 적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대선 주요 후보 중에서 여전히 박근혜의 탄핵은 잘못된 것이라고 공중파 토론에서 당당히 얘기하고 20% 넘는 득표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총선과 촛불 혁명과 조기 대선 결과까지를 반면교사 삼아 복기하고 숙고하고 교훈을 찾아야 한다. 국정농단의 몸통은 이제 그 윤곽과 일각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 상황조차 국민들 다수의 판단과 행동으로 일궈낸 것이다. 지난 총선의 결과가 그러했다. 하지만 총선 이후에도 정치권은 국민의 여망을 담아내지 못했다. 국민들은 다시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평화적 직접행동에 나섰다. 1700만여 명의 국민들이 한겨울 내내 촛불을 들어 무소불위의 권력자를 단죄했다. 그 와중에 정치권은 여전히 갈팡질팡했다. 촛불을 든 국민들은 스스로 성찰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각자의 처지에서 성찰하고 그리고 미래를 그려냈다.

국민이 주권자임을 외면하거나 망각하고 개인적으로 침잠하고 혼자 탈출구를 찾았던 그 선택들이 국정농단의 현실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성찰했다. 함께 돌보고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으면 소수의 권력층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인간 소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성찰했다. 동원된 하나의 군중이 아닌 자각하고 성찰한 다수 국민들의 자발적 행렬이었기에 그토록 놀라운 평화혁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와 촛불 혁명을 보면서 ‘악의 평범성’과 ‘인간 상호성’이란 말을 떠올렸다. ‘악의 평범성’은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이 배경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스 친위대 중령으로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를 받은 전범이었다. 그는 패전 후 약 15년간 숨어 지내다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사형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이히만은 평범한 가장이었으며 직무에 충실한 시민이었다고 하는 사실이 많은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박근혜 국정농단이 가능했던 건 어쩌면 평범해 보이는 다수 개인들의 일상 속 매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은 과한 것일까? ‘인간 상호성’은 행동경제학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행동경제학의 과학적 실험 결과 인간은 상호적 존재라는 것이 매우 유력한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상호성의 핵심은 남이 해주는 대로 나도 행동한다는 것이다. 신뢰에는 신뢰로, 배신에는 배신으로 답하는 것이 대체적인 인간 행동 방식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실험 결과 대체적으로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9년에 걸친 국정농단의 암흑기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촛불 혁명을 보면서 이 두 가지 개념을 떠올린 것은 앞으로 어떤 미래가 올 것인지는 촛불의 힘으로 세운 새 정부에만 달려있지 않다는 것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 이후 여론조사에는 국정지지도가 80%를 넘고 있다. 그만큼 갈망과 열망이 컸던 탓이리라.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초기 인사와 정책들이 국민들의 갈망과 열망에 부응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기원한다. 그것이 곧 국민들의 미래를 열어가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촛불의 정신과 에너지가 살아 쉼쉬기를 기원한다. 개인화된 일상이 권리일수도 있지만 부조리한 현실을 외면하는 관료화되고 개인화된 일상은 곧 권력의 일탈과 국민다수의 소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잊지 않기를 기원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함께 살피고 돌봐야 한다는 것이 전제이다.

OECD 국가들중 행복지수 최하위인 대한민국이 이번 정권교체를 시작으로 이제는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중심으로 국가정책과 삶의 일상이 바뀌는 시작이 되기를 기원한다. 적폐가 쌓이면 불신이 확산되고 배신의 사회가 된다. 적폐의 또 다른 얼굴인 악순환의 사회, 성장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 무한경쟁의 시대는 이제 그 막을 내리게 해야 한다. 이번 정권교체는 향후 30년 대한민국 행복지수를 높여가는 기초를 탄탄히 쌓는 시작이어야 한다. 켜켜이 쌓인 적폐를 과감히 청산하고 인간 신뢰를 확산하며 의리와 상생의 사회로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촛불혁명의 힘을 믿고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