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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 적폐의 종말로 대처하자

익산시민 유 성 무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쓴 <노동의 종말>이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책의 요지는 IT 등 첨단기술이 만든 제3차 산업혁명으로 시장의 세계화와 생산의 자동화 시대에 진입하면서 부의 창출 및 분배 방식이 변했다는 것이다. 즉 전 세계적으로 자본의 힘이 강해지고, 기술에 의한 고용 없는 성장이 이뤄짐을 경고했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노동의 종말을 사회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낙원과 지옥으로 갈릴 것이라고 했다.

제레미 리프킨의 진단은 정확했다. 제3차 산업혁명의 가면을 쓴 신자유주의 사조에서 전 세계적인 자본의 약탈은 심화됐고, 기술의 고용 대체가 가속화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고용 없는 성장에 대처하지 못했다. 외환 위기로 인한 IMF의 그릇된 정책까지 강요받은 우리나라에서는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실업과 비정규직 등 노동의 왜곡이 고착화됐다.

그런데 불과 20여 년이 지난 지금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왔다. 바둑에서 인간을 정복한 알파고로 대변되는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온갖 첨단기술들이 융복합을 일으키면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도 힘든 시대가 도래 했다. 우리가 조금만 잘못 대처하면 제레미 리프킨이 예언한 노동의 종말로 인한 생지옥이 펼쳐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전 세계가 하나로 묶여서 치열하게 경쟁하게 될 제4차 산업혁명을 우리나라가 주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고 이미 정상적인 경제 질서가 붕괴된 우리나라의 현실을 볼 때,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제4차 산업혁명의 과실을 향유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보인다. 이대로라면 일부의 기득권층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진짜 <헬 조선>이 열릴 수도 있다.

소위 말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 본질적으로 별다른 의미는 아니다. 이미 우리가 겪었던 기존의 산업혁명처럼 부의 창출과 배분의 방식이 바뀜에 따라서 국민 개개인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두가 소외되지 않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제4차 산업혁명에 대처하는 우리사회의 역량이며, 이런 역량을 확보하려면 과감하게 적폐를 청산해야만 한다.

왜 우리나라는 지난 제3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처에 실패했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일제 강점기 이후 독재와 반민주 정권을 거치면서 뿌리 깊게 박힌 적폐가 주된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적폐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지, 나 또는 내 집단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공동체 의식의 결여다. 말 그대로 세상이 송두리째 바뀌는 산업혁명을 낡은 정신 상태로 어찌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북한 핵과 미사일, 사드를 중심으로 하는 안보위기, 국가 시스템 전반에 똬리 틀고 있는 적폐, 일자리 창출과 노동 정상화를 통한 민생 문제들을 동시에 풀어야 하는 실로 힘든 과제를 짊어지고 시작했다. 이 문제들은 난마처럼 얽혀 있지만, 근본적으로 적폐에서 비롯된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9년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자. 원칙과 대책 없는 대북 강경책과 외교정책이 작금의 안보위기를 불렀다. 천문학적 예산을 날려버린 4대강 개발·해외 자원투자·방위산업 비리와 창조경제를 빙자한 국정농단 등이 국고를 거덜 냈고, 가진 자를 위한 국가 운영으로 민생을 파탄으로 몰고 갔다. 결국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적폐이기 때문에, 그 해법 또한 적폐 청산 외에 별개로 있을 수 없다.

지금 당장 대화로 안보문제를 해결하고, 공공부분과 경제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왜곡된 노동의 가치를 정상화하면서 서민들의 숨통을 틔워놓는 정책이 시급하다. 그러나 시급함에만 매몰되어 재벌대기업과 국가권력기관, 언론 등 정작 중요한 적폐 청산을 미룬다면, 결국 또 다시 안보와 민생 문제의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경제 파탄과 국론 분열은 꼬리를 물고 문제를 악화시켜갈 것이다. 적폐 청산 없으면,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없다.

이번에도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면 제4차 산업혁명 대처에 실패할 것이 자명하다. 제4차 산업혁명의 성격을 볼 때,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되면 적폐가 더 구조적으로 우리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적폐 청산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막중하다. 적폐 청산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제4차 산업혁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적폐 청산에는 기득권층의 엄청난 저항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철저하게 국민만 바라보고 소통하면 극복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라. 정의로운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어 하는 국민과 협치하라. 그것이 제4차 산업혁명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