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문화원 고문
김 복 현

우주 속의 작고 푸른 행성인 지구에는 밤낮이 있고 이 밤과 낮이 하루를 만들고 하루가 모여 달과 해를 이루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구의 남반구와 북반구는 정반대의 계절이다. 지금 남반구는 겨울이고 북반구는 여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유월이 오기 전부터 일찍 시작된 더위 때문에 공공 기관에서는 때 아닌 에어컨을 틀어 열을 식히고 있으며 미처 준비되지 않은 여름에 대처하느라 괜히 분주해지기도 한다.

여름에는 열이 나야하고 더워야 여름이라고 하며 주변 자연환경이 여름답게 옷을 갈아입고 있다. 온갖 식물은 무성하게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무르익어 가고 뜨거운 여름을 이겨내기 위해서인지 나뭇잎들도 무성해진다. 사람들도 여름을 이겨내기 위해서 열나면 시원한 곳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창문을 열기도 하지만 에어컨을 틀어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여름을 상징하는 단어를 보면 ‘무덥다’ ‘열나다’ ‘뜨겁다’라는 단어들이 먼저 떠오른다. 특히 금년은 유월 초인데도 연일 기온이 30도 안팎을 오르내리고 여기에 가뭄까지 더하니 더 덥게 느껴지고 있다. 이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는 계절에 선인들의 지혜를 하나 알고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돼 추억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여름의 문턱을 넘을 찰나에 선인들은 열나는 초여름을 무사히 이겨내고 일 년 농사 준비도 어느 정도 마친 후 남은 기(氣)를 남자는 씨름으로 여자는 그네뛰기로 풀어야만 했던 단오 행사를 명절로 여기고 즐겼다.

금년 단오는 윤 오월이 있어 예년보다 빨리 다가온 명절이 됐다. 음력으로 4, 5. 6월이 여름이다. 4월은 초여름으로 맹하(孟夏)라고 하며, 5월은 중하(仲夏), 6월은 계하(季夏)라고 했다. 그리고 음력으로 윤달은 3년 또는 2년마다 들어있다. 2012년 윤삼월, 2014년 윤구월, 2017년 윤오월, 2020년 윤사월, 2023년 윤 이월이 각각 들어있다. 음력과 양력의 한 달 기준을 보면 보통 초승달이 된 때부터 다음 초승달이 될 때까지 또는 보름달이 된 때부터 다음 보름달이 될 때까지 약 29.5일 걸린다. 그래서 음력 열두(12)달은 양력 1년보다 약 11일이 짧다. 따라서 ‘19태양년’ 동안 13개월은 윤년을 일곱 번 두는 ‘19년 7윤법’을 사용하고 있다. 만약 윤달을 끼워 넣지 않으면 인류는 오뉴월에 눈보라가 몰아치고 동지섣달에 에어컨을 켜야 하는 큰 혼란과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선조들은 음력과 24절기를 지혜롭게 사용해 왔다. 24절기에 따르면 한 해의 시작인 세수(歲首)는 설날이 아니라 입춘이다. 윤달 윤(閏)자는 문(門) 안에 임금 왕(王)이 갇혀있는 모습이다. 옛날 왕은 윤달이 든 해 정월 초하루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문안에서 책력을 나눠주던 의식에서 생긴 글자라고 한다. 어찌 되었든 예부터 윤달의 개념은 “덤이나 보너스”로 생각했기 때문에 윤달을 가리켜 ‘공달’ 또는 ‘썩은 달’ 이라고도 했다.

미신이지만 윤달에는 천지의 모든 신이 인간에 대해 감시를 하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윤달에는 무덤을 옮겨도 무탈하고, 부모님의 수의를 만들어 두면 장수한다고 믿기도 했다. 지금도 노인들은 이 풍습에 따라 생활하고 있으며 장사꾼들도 한몫 챙기려 한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하루 열두시와 일 년 열두 달을 상징하는 십이지(十二支)를 만들어 이용하고 있다. 십이지로 달을 계산하면 음력 사월(四月)은 사월(巳月)이고 오월(五月)은 오월(午月)이다. 발음이 같으면 의미도 통한다고 보는 것이 문자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 조상은 양은 남자로 여자는 음으로, 하늘은 홀수로 땅은 짝수로 인지했다. 숫자로 홀수는 1,3,5,7,9의 다섯 개가 있다. 이 홀수 중 두 개가 겹치는 날은 모두 명절로 삼고 다양한 행사를 즐겼던 조상들의 풍습이 우리 민족의 생활 풍습에 배어 있다. 그래서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음력 5월 5일은 오(五)자가 겹치므로 중오절(重五節)이라 하였다. 또 오(五)는 홀수의 중간 곧 하늘의 중간이므로 단오를 달리 천중가절(天中佳節)이라 부르며 다양한 세시풍속을 즐겼다. 단오(端午)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단오의 단(端)은 첫 번째를 의미하고 오(午)는 오(五)와 통하므로 단오는 첫 번째 오일 곧 초닷새를 의미한다. 그리고 단오의 단(端)자는 식물이 생명력을 갖고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모양인 시초 단(端)에서 왔다. 따라서 단에는 시초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가뭄으로 온 나라가 열병을 앓고 있는 요즈음 열병에는 시원한 비와 바람이 제격이라고 하는데 흡족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가 안 오면 비를 내리게 하는 ‘기우제’라도 지내야 마음의 안정이 있었기에 조상들은 어김없이 비가 내리도록 기우제를 지내면서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았던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과연 무엇이 있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