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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때문에 웃는다

윤복순 윤약국약사

딸이 봄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가자고 한다. 딸은 이번 학기도 휴직이라서 방학이란 의미도 별로 없지만 애들이 방학을 해 다섯 명이 다 집에 있으니 지치는 모양이다. 보다 못한 시어머니가 쌍둥이 둘을 봐줄 테니 1박 2일로 다녀오라고 했단다.

목적지는 보길도로 정하고 민박집이며 여행계획은 딸이 맡았다. 딸네와 여행길은 재미있다. 손자 손녀들이 차안에서 재잘재잘 거리고 휴게소에서 조그만 것만 사주어도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사위가 운전을 잘 해 장거리 여행도 부담이 적다.

민박집에서다. 삼겹살에 전복으로 과식을 했다. 저녁식사 후 중리해수욕장을 걸을 생각이었는데 망끝전망대에서 해보내기(일몰)를 즐길 때 바람이 온 몸을 강타해 더 이상의 바람은 무리였다. 그날 바람은 태풍경보 수준이었다. 실내운동을 하기로 했다. 남편, 나, 민희, 민정, 해성이가 나란히 누웠다. 자전거타기를 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자유자재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뱃살이 꼿꼿하다고 남편이 기권을 했다. 그리고는 심판을 보겠단다. “길해성 선수 다리를 좀 더 올리세요, 발이 땅에 닿으면 탈락입니다, 발을 돌리지 않고 들고만 있어도 탈락입니다. 100m 달리기 시작하면 발을 최대로 빨리 돌리세요.” 애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100m달리기 10초 동안, 3 2 1 시작” 남편의 신호로 열심히 발을 돌렸다. 모두 통과했다. 이번에는 20초 동안, 해성이가 기권했다. 다시 30초로 이어졌다. 민정이가 탈락했다. 민희와 나만 남았고 둘 다 무사히 마쳤다.

“할머니 1등, 민희 2등”

“할아버지는 할머니 1등 시키려고 할머니 편만 들어요?”

어째서 할머니가 1등이냐고 따지는 것이다. 너는 발이 방바닥에 있었고 할머니는 끝나고도 발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쳐서 방바닥에 놓은 게 아니고 다 끝난 줄 알고 그랬으니 할머니와 저만 1등을 다시 겨루자고 한다. 심판도 할아버지가 보지 말고 오빠가 보란다.

민희는 민정이와 연년생이지만 18개월이 늦다. 어릴 때 한 살은 차이가 크다. 그런데도 언니한테 절대 지지 않으려 한다. 설날 때다. 애들 다섯이 북새통을 떨어 아래층에 미안해 공원으로 데리고 나갔다. 마침 그네 세 개가 모두 놀고 있다. 셋이 하나씩 차지했다.

신나게 구르니 남편이 조금 더 굴러봐 하면서 올라가는 높이를 가늠해 읽어 주었다. 해성이는 나이도 제일 많고 남자니 금방 3m, 3.2, 3.5, 4.0 이런 식으로 팍팍 올라갔다. 옆에 있던 민정이가 “할아버지 나도 높이 재주세요.”한다. 쉽게 되지 않았지만 20여분의 도전 끝에 4.0을 찍었다.

민희가 가만있을 리 없다. 유치원생이고 아직은 어려서 역부족이다. 2.2, 2.7, 3.2 여러 번 할수록 힘이 부쳐 2m대로 내려간다. 다시 힘을 내 3.5까지 올라갔다. 그 시간이 꽤 되었다. 이러다가 애 잡을 것 같아 그만하라고 했다. 할 수 있다며 버틴다.

혹시 몰라 넣어갔던 과자를 주며 에너지 보충하고 다시 하자고 달랬다. 그네에서 내려오질 않는다. 남편이 다시 카운터를 했고 나도 박수를 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소리소리 지르며 응원을 했다. 조금 더 올랐을 때 4.0 이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4m를 찍었으니 내려와서 과자 좀 먹으라고 사정사정해도 내려오지 않았다. 자기가 보기에도 언니만큼 못 올라간 것 같았는가보다. 너는 어리니까 실은 네가 더 많이 올라간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한 뱃속에서 나와도 아롱이다롱이라고 민희가 승부욕이 강하다면 민정이는 돈에 관심이 많다. 내가 외국여행을 다녀오면 저도 가고 싶어 한다. “너 지금까지 돈 얼마나 모아놨어?” “백만 원요.” 그러면 가까운데 갈 때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좋아하더니 금방 가지 않겠단다. “왜?” “여태까지 모은 돈 어떻게 한 번에 다 써요”한다.

이번 보길도에서도 나에게 오더니 “할머니, 이번 여행에 우리 엄마가 돈 다 썼지요?” 하고 묻는다. 할머니 말 잘 듣고 네가 판단하라고 했다. 너희 엄마는 애기가 다섯이고, 너희들 키우느라 돈 많이 들어가지. 할머니는 애기 둘이고 너희 엄마 돈 벌고 서울 외삼촌도 돈 벌지? 너희 엄마가 돈 많이 들어가겠어, 할머니가 더 많이 들어가겠어?

저희 엄마가 많이 들어가겠단다. 그래 맞아, 할머니가 여행비 써야 되겠지. “근데 엄마가 방이랑 다 예약했잖아요?” 할머니는 그런 것 잘 못하니까 엄마가 도와주는 거야. “아까 배표 살 때도 엄마랑 같이 갔잖아요.” 배 탈 때는 신분증을 보여줘야 하거든. 너희들은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초본을 가져왔어. 그걸 보여주기 위해 같이 간 거야. 이제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애들 땜에 웃는다고 한다. 윤선도여행에서 손자 손녀의 양념이 없었다면 얼마나 단조로웠을까. 언제까지 애들이 어른들 눈치 보지 않고 저희들의 생각을 말하고, 나는 또 이 애들이 만족할 수 있는 답을 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벌써 해성이만 해도 논리적으로 말을 한다.

해남 고산윤선도 유적지에서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들고 민희가 내게 쪼르르 오더니 “할머니 나 이순신장군 도장 찍었어요.”하며 종이를 내민다. 이래서 또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