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사회경제연구소 대표
권 태 홍

선거 때만 되면 온갖 공약이 제시된다. 공약만 보고는 국회의원의 공약인지, 단체장의 공약인지 구분이 안 간다. 지역 개발공약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예산사업이다 보니 국비확보 능력 과시 경쟁이다.

얼마 전 국토연구원 연구원이 익산에서 강연을 했다. 제목은 ‘저성장 시대, 축소 도시가 나아가야 할 길’이었다. 심각한 주제였다. 축소 도시란 구조적인 인구감소로 인해 과거 성장시대에 건설한 주택과 기반시설이 남아도는 도시로 정의한다. 닥쳐오고 있는 저출산, 저성장, 고령화의 진행속도와 영향은 익산과 같은 지방도시에 더 클 수밖에 없다. 인구절벽은 이미 현실이다. 익산도 점진적인 축소 도시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익산시는 2000년도에 인구의 정점을 찍고 현재는 30만 명 초반대의 인구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축소 도시의 대표적인 현상이 구도심의 공동화 현상이다. 영등동, 모현동이 개발되면서 예전 구도심들은 빈집, 폐상점, 유휴시설이 넘쳐난다. 면단위는 더 심하다. 1/3 내외로 인구는 줄고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어 독거노인들도 급속히 늘고 있다. 재정자립도는 계속 하향세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정치인들은 선거 당선을 위해서 4년짜리 개발공약을 쏟아낸다. 과연 지속 가능한가?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이제 이런 질문들 앞에서 서야 한다. 4년짜리 비전이 아니라 10년, 20년의 시대 흐름과 비전을 놓고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와 행정 입장은 인구수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 입장에서는 공공서비스를 잘 받을 수 있고, 도시 전체가 조화롭게 운영되는 것을 원할 것이다. 조화로운 삶의 질이 확보되지 않으면, 시민들의 행복도와 소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개발 따로 시민의 삶 따로 일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심화된다. 양극화와 복지사각지대는 계속 확대되고 사회불안도 심화될 것이다. 최근 만경강 개발 문제가 제기되었다. 도로도 뚫고 택지도 만들자고 한다. 끊임없이 시가지를 땅이 싼 곳으로 확장해나가는 양상이다. 구도심의 크기와 관리비용은 점점 더 커지고 사회불안 공간으로 도시가 분리될 것이다. 도시 공간도 분리되고 소득에 따른 거주공간도 분리되게 된다. 개발과 성장 중심의 시대에서 발전과 삶의 질 향상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 적정한 개발, 전략적인 개발이 필요하고, 그 전제에는 시민들의 조화로운 삶의 질 향상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다양하게 확충하고 노인들과 사회적 약자들도 일할 수 있도록 미래 복지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신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관점을 바꿔서 미래적인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의 모범적인 익산시로 선제적인 발전전략을 세울 수는 없을까?

전북도 예외는 아니다. 전북의 가장 큰 숙제는 새만금이다. 새만금사업이야말로 전형적인 선거공약사업이다. 87년 대선 때 공약으로 제시된 이후 대선에서 부풀려지고 뒷감당 어려운 반복이다. 어마어마한 사업비를 쏟아부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구만리다. 처음에는 농지 100%였지만 지금은 농지 30%에 복합산업용지 70%로 변경되었다. 2020년까지 새만금 수질 3급수 확보를 목표로 1단계 10년 사업을 마치고, 2단계 10년 수질개선사업이 진행 중이다. 매립토를 구하지 못해 석탄재 폐기물을 천만 톤이 넘게 매립하려는 등 근시안적 무리수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관심은 어떻게 국비를 많이 확보해서 빨리 매립을 진행시켜 땅을 확보할 것인가에 온통 쏠려 있다. 주요 대선후보들의 새만금 공약은 천편일률적 국가사업으로 진행하겠다는 것이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목표는 실현 가능한가? 지속 가능한가? 이러한 상식적인 질문들은 대선의 장밋빛 공약과 개발 기대심리 앞에서 묻혀버리고 있다. 어부들은 생업을 모두 잃었고, 바다같이 넓던 갯벌은 사라져버렸다. 잃어버린 천문학적인 기회비용은 무시되고 있다. 새만금 수질이 개선 가능한가? 수 조원을 10년 넘게 쏟아부었지만 현재 수질은 5~6 급수로 악화되어 있다. 매립토를 확보하기 위해 계속 준설하고, 수질은 더 악화되고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것을 시화호 사례로도 충분히 경험했다.

국가예산의 상당 부분을 새만금만을 위해 쏟아부으면 모를까 매립토를 확보해서 목표한 땅을 만들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후 개발 단계에서 수심 30~40m 아래의 단단한 땅위에 기반 시설을 해야 하는 천문학적인 비용은 빼더라도. 제한된 예산과 도달 불가능한 목표 사이에서 새만금사업은 계속 심각한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이제는 솔직해져야 한다. 지금이라도 해수유통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자연이 스스로 정화해 줄 것이다. 이미 육지화되어 있는 곳을 잘 활용하고 발전적인 성공사례를 쌓아서 점차 확장 개발해야 한다. 새만금 신공항등은 그다음의 검토과제이다. 수요가 과장되고 개발비용만 천문학적으로 들어간 이후 공동화된 국제공항들이 한 두 개 인가? 새만금 개발의 열거형 목표들이 서로 상충되어 예산은 예산대로 들고, 원래의 목표가 욕심에 그치지 않음을 훨씬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서야 깨달을 것인가?

지난해 총선과 올해 조기 대선을 거치면서 국민들은 적폐 청산을 요구했다. 4년짜리 개발공약, 국가 예산의 경쟁적 소모, 시민들의 삶과 행복지수를 높이지 못하는 개발 이해관계자들 중심의 정책, 국가와 도 시군의 발전을 통합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지역이기주의의 사회적 딜레마들이 결국 적폐의 온상이 된 것은 아닐까?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와 다른 접근을 할 것을 기대해본다. 지속 가능하며 도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전환이 필요하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은 전환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