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진으로 예안에 사는 생원 김부필이 안동의 이진사 존친가에 아룁니다. 엎드려 아름다운 명을 받자와 영녀令女를 제 동생의 아들인 김해의 배필로 허락해주심에 따라 이들의 궁합을 점쳐보았더니 길조였습니다. 삼가 길일을 택해보니 26일 갑인일이 좋다고 합니다. 혼인 날짜로 어떠한지 오직 처분만을 기다리겠습니다. 엎드려 특별히 보살펴주시길 바랍니다. 나머지는 다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융경 5년 12월 25일 첨진 김부필 재배」

위 문서는 1571년 김부필이 작성한 김해의 혼서이다.

혼서에 따르면 김부필은 먼저 딸을 자신의 조카 김해의 배필로 맞이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이재에게 감사드리고 있다. 이어 신랑과 신부의 궁합을 따져 혼인 날짜를 26일로 택하고 동의 여부를 물었다. 혼인 날짜는 생리일들을 고려해 신부측에서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지만 이 혼서에서는 신랑측에서 궁합을 고려해 혼인 날짜를 정한 후 신부측에 동의를 구하고 있다.

혼서는 혼인에 앞서 상대편에 보내는 예장으로 이를 보낸다는 것은 정식 혼인 절차를 밟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렇게 예의와 격식을 갖추는 경우는 처와 혼인할 때뿐이었다. 첩을 맞이할 때는 예법에 특별히 구애받지 않았다. 중매쟁이를 통하지 않고 직접 청혼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정식 혼례를 올리지 않으니 혼서를 보낼 이유도 없었다. 따라서 처와 첩을 판별할 때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이 혼서의 유무다.

조선시대에 처와 첩은 한 지아비를 섬기고 사는 아내라는 점에서는 같았으나, 집안 내에서 그들의 지위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었다. 이것은 가정 내 갈등의 불씨가 되었고, 아들 대에 이르러 적자, 서자, 얼자의 문제로 얽히면 갈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처와 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처는 처대로 첩은 첩대로 각기 다른 차별과 층위가 존재했다. 처의 경우 초취, 재취, 삼취가 다르고 첩이라도 신분에 따라 양첩과 천접으로 구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