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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사회

(사)한국예총 익산시회장

김영규

한 해가 저물어 십여일 후면 새로운 희망이 움트는 새해를 맞이한다. 우리는 새해를 맞으면서 지난 한 해 동안의 우울을 떨쳐버리려 한다. 우리 몸속에 삶의 에너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때, 그냥 모든 것을 끝장내버리고 싶을 때, 뭐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일 때, 우리는 잠시 멈춰 우울이라는 원인이 어디에서 발생했나?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 성장통을 겪는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우울의 터널이 기다린다. 그러나 타인의 우울에 대하여는 무관심하고 무지하며 더러는 무자비하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우울을 입 밖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우울상태를 마음의 병으로 받아들인 것은 20세기 초부터였다고 한다. 과거 사람들에게 우울이란 신의 뜻을 거스른 벌이거나 부럽기까지 한 천재의 특징이었다. 의학용어에서 예술언어, 그리고 현대의 일상적 언어로 자리잡기까지 그리 오랜시간은 아니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우울의 중요한 원인으로 '상실'을 제시한다. 특히나 끊어진 관계를 충분하게 아파하고 슬퍼하는 애도과정을 정상적으로 겪지 않는 상실은 마음을 퇴폐하게 만든다. 애도란 그 사람을 보내주는 의식이다. 프로이드는 말하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마음속에 붙은 채 보내주지 못하면 우울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프로이드는 우리를 움직이는 첫 번째 원인이 죄의식이라고 생각했다. 나 때문에 다친 사람, 나 때문에 힘든 사람, 내가 충분히 돕지 못한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우리가 택하는 한가지 방법은 ‘행복해지지 않기’다. 내 인생이 불행하면 그에대한 미안함이 어느정도 상쇄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같은 무의식적 전략때문에 나의 가족이 같은 덫에 빠져서 내 아이와 배우자도 결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울이란 자신을 상실하는 경험이다. 따라서 나 자신이 누구이며, 나에 대한 정답이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하고 누구를 만나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구도 이 질문에 정답을 주지 못하니- 그리하여 우리는 낙담하고 실수하고 잘못하고 어긋난다. 동시에 우리는 스스로 벌하거나 남의 평가를 밀어버리거나 불안을 숨기게 되는 것이다. 마음은 피폐해지고 관계는 사라지며, 우울은 자신에 대한 비관적 낙담으로 성장된다. 그러나 이와동시에 우울은 우리가 반드시 싸워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그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잘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내가 언제나 불행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항상 잘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스스로를 벌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에게 이야기하자. 우리는 어쩔수 없는 운명으로 느꼈던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우울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며 어디서든 시작될 수 있다. 오늘날 우울증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가 됐지만 이를 바로보고 대처하는 데는 아직 서툴러 보인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우울을 외면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 관심있게 바라보고 민감하게 대처할 때 함께하고 싶은 사회, 자랑스런 우리고장, 살고 싶은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사에 희·노·애·락 즉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 유쾌감과 불쾌감 등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을 시시각각 느끼며 살아간다. 우울 역시 누구나 느끼는 일상적인 감정이지만 그 색이 짙어지면 삶 전체가, 사회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 즉 일상에서 느끼는 가벼운 우울감이 습관화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점차 우울의 늪에 빠져든다. 이와 같이 침체된 기분이 매사에 무기력해지면서, 모든 일이 귀찮아지고 서서히 심해지는 우울감은 결국 허우적거릴 힘조차 남기지 않고 사람과 사회를 가라앉게 하니- 이것이 바로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우울감과는 그 감정의 지속 기간과 심각성에서 차이가 크다고 한다. 필자는 의학전문가가 아니기에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방법에는 일가견이 없으나, 우울증으로 진단받은 사람은 생활 전반에 걸쳐 흥미와 활력, 의욕이 현저히 줄어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오기 어렵다고 말한다.

우울증은 의학적 치료는 물론이겠으나 가벼운 산책이나 운동으로 몸을 움직이고 영화나 연극, 음악회 등을 감상하고 그림을 그려 감성을 건드려 본다. 그리고 자신이 비교적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취미를 찾아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본다. 목표를 만들고 성취하는 과정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초기에 해야할 시도라고 생각이 되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가 아닌가 한다. 즉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다. 우리 주변 우리가족, 우리사회, 우리조직에 우울한 사람이 없는지 둘러보고 그를 위하여 손길을 뻗어 상호작용이 이루어짐으로서 우울을 극복할 수 있다. 결국 우리사회를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만들어 새해를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