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사회경제연구소 대표

권 태 홍

초고령화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인구절벽도 현실화되고 있다.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는 경제적 양극화를 더 악화시키고 빈곤과 질병 앞에 더 많은 사람들이 노출될 위험에 처할 것이다. 보건의료 사각지대도 더 커질 수 있다.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병원은 치료하는 곳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일까? 깊이 살펴볼 때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병원은 아파야 가는 곳이다. 2년에 한 번 하는 종합검진도 질병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주목적이다. 병원에서도 결과를 통보해주면 그뿐이다.

특별한 질병이 발견되지 않으면 그 자료는 묻혀버리고 만다. 치과도 그렇다. 이가 아프기 전에는 치과에 거의 가지 않는다. 통증이 없고 육안상 충치가 없으면 건강하다고 생각하거나 병원에 가 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치석 제거하는 스케일링 치료는 1년에 1회 의료보험적용을 받게 되었다. 잇몸질환이 없는 경우 약 1만3,000원 정도의 본인부담금을 내고 받을 수 있어 부담이 적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결국 병을 키우다 병원에 가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치료도 쉽지 않게 된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이런 생각들과 모습들이 당연한 것일까?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 이런 질문을 올렸다. ‘정말 궁금해서 질문. 이가 아프지 않은데 치과 가보신 분 계실까요?’ 수십 개의 답 글이 달렸다. 그래도 예상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스케일링이나 정기검진을 챙겨서 받고 있었다. 하지만 왜 그런 것을 물어보는지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었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답하지 않은 분들 중 상당수는 아프지 않을 경우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다. 건강보험도 치료행위에만 적용된다. 질병치료가 아닌 건강 상담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도 않는다.

또 행위별 수가제가 되어 있어서 의사 입장에서는 많은 환자를 볼수록 많은 치료를 할수록 많은 수익을 올리게 되어 있다. 아플 때 병원가고 병원에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치료해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질병중심, 치료 중심, 속도 중심, 수익 경쟁 중심의 의료시스템이다. 의사들은 경쟁적인 의료현실과 수익 압박에 눌려야 하고 환자들은 과잉 경쟁 앞에 맨 몸으로 서야 한다.

그뿐인가? 이러다 보니 동네병원은 무시되기 일쑤이고 큰 병원을 선호한다. 큰 병원일수록 치료를 잘 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동네병원은 고사 위기에 몰리고, 큰 병원일수록 몰려든 환자들 때문에 중한 병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의사 보기도 더 어려워지며 진료시간은 더 짧아지기 일쑤이다. 그러니 환자에게 질병에 대한 정보전달도 제대로 안될 뿐 아니라 환자의 선택권도 별로 없다. 정부조차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대자본 중심의 의료체계를 부추긴다. 치료 수요는 더 커지는데 약물과 항생제 사용은 과다해지고, 치료효과는 떨어지며, 돈은 더 많이 드는 상황이다. 67% 정도이던 건강보험 보장률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63%로 떨어졌다. 악순환이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예방에 좀 더 집중할 수 없을까? 일상생활에서부터 건강관리를 해나가는 시스템, 질병을 초기에 발견해서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시스템은 없을까? 국가차원에서 보건의료제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건강보험체계도 혁신해서 보험료 부과의 공정성도 확보하고 보험 보장률도 90% 이상으로 대폭 늘려야 한다.

하지만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지역에서부터 먼저 변화를 만들 수 없을까? 당장에 자조적이고 대안적인 개선책은 없을까? 조금만 더 시야를 넓혀보고 생각을 바꿔본다면 방법은 있다.

의료사회적협동조합과 주치의 제도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과 북유럽 등은 이미 시행하고 있다. 돈 많은 부자들만 주치의를 두는 것이 아니다. 동네의 의사가 주민을 진료하는데 20~30분을 들이고, 초진환자에게는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유럽에 한 명의 의사가 1600명 ~ 3200여 명의 주민에 대해 주치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예약하고 계획해서 시행한다.

정부는 그 주치의 담당 주민 수만큼의 1년 치 진료비를 한꺼번에 책정해주니, 결국 주민이 건강할수록 남는 진료비가 의사의 수입으로 늘어나는 구조이다. 건강관리와 질병 예방을 우선하는 것이다. 가벼운 질병, 만성질환, 일상적인 건강관리는 동네병원 주치의가 담당하고 대형병원은 중증질환이나 중병의 치료에 집중하는 협업체계이다.

주치의 제도를 시행하면 환자가 대형병원을 찾기 전에 주치의가 문지기 역할을 하므로 중복진료가 줄어들고 의료이용량이 적정한 수준으로 관리된다. 또 검진 데이터를 축적해서 질병예방을 위한 건강소모임 구성, 건강 상담과 생활 관리, 질병의 초기 발견을 위한 대책을 세워 갈 수 있다.

동네의 1차 의료기관에서 질병예방, 건강 상담, 건강증진서비스와 같은 포괄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 환자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건강보험재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

다행히도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이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약칭 의료사협)을 설립하고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게 되었다.

의사와 주민들이 함께 건강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이럴 경우 과잉진료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치료 중심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정기적인 검진을 바탕으로 예방과 초기 치료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1994년 안성 의료생협을 시작으로 20년 이상의 실천적인 모범사례도 형성되어 있다. 현재 전국의 의료사협은 21개가 활동 중이고 상당한 성과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주 의료사협도 활동 15년째이다. 이제 익산에서도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의사와 주민이 함께 만들고 건강공동체를 만드는 주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자.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