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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관의 정치개입

황만길 지역진흥원장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이 점입가경이다. 그 시작과 끝이 도대체 어느 곳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국정원, 경찰, 국방부 등 국가 핵심기관들이 앞다퉈했다고 판단할 만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들 기관 핵심인사들이 수시로 국내정치 개입을 위해 협의하고 공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신문방송 등 언론과 국가기관이 편향된 정치적 입장을 갖고 광범위하게 국내 정치에 개입했다면 이것은 국기문란이 분명하다.

검찰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의 경우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 트위터 등에 선거정치관련 글을 올리고 퍼 나르기를 조직적으로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직원 3명이 검찰에 긴급 체포되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와 관련해 상당한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보이는 검찰이 국정원 직원들에 대해 긴급체포에 나선 것이다.

주목할 점은 트위터에 오른 대선관련 글이 1초의 오차도 없이 자동 리트윗(퍼 나르기) 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해 수백 개 계정으로 수백만 건을 유포한 것 아니냐는 점이다. 경찰이 축소, 은폐한 것으로 보이는 게시글이나 댓글을 제외하고 확인된 불법개입 건은 1,977건이라고 확인했는데, 만약 트위터 상에서 자동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백만 건의 자동 리트윗을 시도했다면 이건 대선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한다. 범죄 집단도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불법을 국가기관이 자행한 것이다. 전방위, 총체적으로 국가기관이 나서 국내정치, 대선에 개입했다고 판단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국가정보기관이 법으로 금지된 선거개입과 국내정치 개입을 전담부서까지 두고 자행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4년 동안 600억 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1개 부서가 사용한 예산인데 그 사용처조차 국가정보기관이라는 이유로 그냥 활동비라고만 보고했다고 한다.

국회 정청래 의원실에 따르면 소위 댓글 알바라고 알려진 이정복씨에게 지급한 9,234만원이 활동비라는 명목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는 것이다. 이 경우 수많은 외부 조력자를 국내정치와 대선 개입에 끌어들여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고 여론을 조작하도록 하는데 600억 원이 사용된 것 아니냐는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2013년 사용한 심리전단 부서의 예산은 150억 9,000만원이었는데 심리전단 77명의 인건비가 포함되지 않은 예산이기 때문에 막대한 예산이 장비구입으로만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고 결국 외부 조력자들의 활동비로도 사용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약 1억 원을 받은 이정복씨 처럼 수많은 외부 조력자들이 활동비를 지원받고 대선과 국내정치에 개입해 여론을 조작하는 일을 했다면 민주국가에서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과 국가기관의 대선과 국내 정치개입은 불법이기도 하지만 법 저촉 여부를 떠나 장기간의 독재정치와 1당 정치 폐해를 경험한 한국사회에서 재현되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제거와 3.15부정선거, 박정희 대통령의 5.16쿠데타와 유신독재, 전두환 정권의 폭압정치는 결국 국가정보기관이 일선에서 기획하고 실행한 결과물이었다. 통치자들의 초헌법적 발상을 충실하게 받아 수행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가 하면 헌법이 유린되고 국민여론이 조작되는 현장에는 국가정보기관의 유습한 조작이 있었다. 이런 악습과 부정적 유산을 안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가기관이라면 과거사를 청산하고 구태와 악습, 불법을 원천적으로 단절시켜야 했다. 국내정치와 대선개입을 통한 정권안보에만 치중한 활동은 결국 국가기관 스스로를 욕보이고 퇴행의 역사를 반복하는 상습범으로 낙인찍는 결과를 가져왔다.

박근혜 정부는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더라도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이 국내정치와 대선에 개입해 국민여론을 호도하고 조작했다는 혐의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하고 회피한다고 해서 이명박 정권하에서 자행된 국정원과 주요 국가기관의 국기문란과 불법 대선개입 및 정치개입이 덮어질 것 같지는 않다. 역사가 지난 대선을 전후한 국정원등 국가기관의 초헌법적, 불법적 대선개입을 어떻게 기록할지는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 사과를 표명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으로 지난 선거가 어떤 식으로든지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일선에 나서지 않는다면 일시적으로 인기를 유지할지는 모르지만 역사와 민심은 원칙 없고 무능한 대통령으로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미지 관리나 인기와 같은 눈앞의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최고 지도자로서의 덕목과 철학, 국정능력에 대해 역사가 어떻게 평가하고 민심은 무엇을 원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