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 정치행정언론학부 2학년 길 태 민

민들레를 보자 아버지가 떠올랐다.

예비군이 되기 전 군복무 시절, 우리 부대에는 유독 민들레가 많이 폈다. 민들레 두 번째 송이는 곧 전역을 앞두는 계절이라 생각하고 그 꽃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두 번째 봄이 될 즈음에 들판에는 또 다시 노오란 민들레가 고개를 내밀었다. 줄기가 어찌나 억센지 예초 작업 때마다 신경 쓰지 않으면 제대로 베어지지 않았다. 녀석은 약 올리기라도 하듯 묵묵히 계속해서 자라났다. ‘사회에서 만났더라면 좋은 인연이 됐을 텐데’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그 녀석을 죽이기 위해 베어내고 또 베어냈다.

시간이 흐르니 흰 눈송이가 맺힌 민들레를 볼 수 있었다. 언제 모습을 바꿨는지는 몰랐지만 굉장히 부드러웠다. 건들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저 녀석 아직도 살아있었네. 징글징글하다’ 하면서도 악착같이 살아남은 그 녀석을 높이 평가했다. ‘나도 저렇게 악착같을 수 있을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때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일과가 끝나고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아버지 목소리가 그리웠을 법하지만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아버지는 아직까지 ‘어려운’ 존재였다.

늘 하던 얘기를 했다. “오늘은 예초 작업을 했어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또 전화할게요.” 끊고 싶던 찰나 아버지가 수화기를 바꿔 드셨다. 약주 한 잔 걸치신 듯 한 목소리로 내게 안부를 물으셨다. 어지러웠다. 아버지가 내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나. 아버지가 무서웠던 걸까 어려웠던 걸까 아니면 어색했던 걸까. 어지럽다는 느낌은 확실했다. 기억은 안 나지만 티내지 않고 잘 얼버무렸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내게 사랑한다 했다.

민들레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부터 싱크대 공장을 하셨다. 내 키의 세배나 되는 붙박이장을 번쩍 들고 내 키만한 나무판자를 대여섯 장씩 옮겼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 마징가제트 같았다.

대다수 사람들은 각자의 아버지를 보면 슈퍼맨이 떠오른다고 했다. 내 아버지는 감정표현이 거의 없는 점을 봤을 때 슈퍼맨보다는 마징가제트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졌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는 차갑게만 느껴졌다.

조금씩 집안일을 알아가면서부터 우리에게 수없는 시련이 있었다는 걸 눈치 챘다. 그때도 아버지는 힘든 내색 하나 없으셨다. 그냥 묵묵히 일하셨고 항상 악착 같으셨다. 노란색 민들레처럼.

‘세상에 민들레처럼 악착같은 사람이 바로 곁에 있었구나.’ 악착같이 사는 사람은 TV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눈여겨보지 않으니 찾을 수 없었던 거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속이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내 몸은 조그마한 입김에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차갑게만 느껴졌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따뜻해 보였다. 아버지 목소리에 하얀색 민들레가 떠올랐다.

민들레 두 번째 송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