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민 유성무

내가 어떤 사물을 몇 가지 도형으로 설명하겠는데, 독자께서는 종이에 그려보시기 바란다. 먼저 삼각형을 그린 후 사각형 1개를 그리고 다시 사각형 4개를 그리면 된다. 독자들께서는 다양한 그림을 그렸을 것인데, 내가 본 사물은 마지막에 말하겠다.
나는 최근 들어 사실(事實)과 진실(眞實)의 의미에 대해 자주 생각해본다. 이 글의 논점을 한정시키기 위해 사실은 ‘그 사건의 내용이 참인지, 거짓인지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서술’이라고 하자. 진실은 ‘거짓이 없는 사실로서 사건의 전체적 맥락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서술’이라고 하자.
복잡다단한 인간 세상에서 하나의 사건은 한 개의 요인과 한 개의 결과로 이뤄지지 않는다. 여러 환경적 요인들이 작용하면서 특정한 요인을 계기로 사건이 일어난다. 이런 관점에서 전체의 맥락을 파악해야 사건의 실체-원인, 과정, 결과, 영향-에 접근할 수 있다.
<논어> 선진편 21장에는 공자가 ‘옳은 말을 들으면 그대로 실천해야 하느냐’는 자로와 염유의 질문에 대해 다르게 대답한 대목이 나온다. 공자는 질문을 한 자로에게는 ‘부형(父兄)이 살아 있는데 어찌 듣는 대로 행한단 말이냐’라고 답했다. 반면에 같은 질문을 한 염유에게는 ‘들은 대로 행하라’고 답했다.
이 사건을 통해 공자를 평가한다면, 그는 말 바꾸기에 능한 사람이다. 완전히 같은 질문에 대해 전혀 다르게 대답했음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목을 통해 사건의 맥락을 보면 사실에 대한 판단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이에 공서화가 공자에게 왜 각각 다른 말을 해줬는지 질문했다. 공자 왈, “염유는 소극적이기에 앞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고, 자로는 너무 나서는 까닭에 뒤로 물러나게 한 것이다.” 공자는 사람의 품성에 따라 적절한 가르침을 줬다는 게 사건의 진실임이 드러난다.
<신약성서>의 여러 복음서에 나와 있는 사건들 중 하나로 예수를 평가해보자.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상인들의 좌판을 엎어버리고 밧줄을 휘두르면서 이들을 내쫓았다. 또 사람들에게 ‘위선자, 독사의 족속, 뱀 같은 자’ 같은 독설을 날린 대목이 여러 차례 나온다.
성서에 씌여진 행위 한 대목만을 놓고 보면,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다. 예수는 신의 아들은커녕 시골에서 상경한 폭력배이자 막말꾼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행위의 전후 맥락을 살펴볼 때, 불의를 타파하기 위한 가르침의 일환이었다는 사건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이처럼 단편적인 사실 자체가 곧 전체적 맥락에서 진실이 될 수 없다. 최소한 중요한 사실들이 잘 정리돼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올바르게 사건의 실체를 인식할 수 있어야 진실이 될 수 있다. 사실이 곧 진실은 아니며, 사소한 사실관계의 누락 또는 가공으로도 진실은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사실을 기반으로 진실의 큰 그림을 사회에 전달함으로써 진실을 드러내고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는 시스템은 사회의 유지 및 발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 역할을 언론이 담당한다. 따라서 언론에게는 자유만큼 책임이 따름이 당연하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내재된 여러 편향으로 인해 생각만큼 논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잘 알려진 프레이밍 효과나 확증편향 등 사고의 시스템적 한계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사실과 진실의 조작이 가능하다. 조작자가 언론이란 사회적 공신력을 업고 의도적으로 반복하여 조작을 해대면 대부분이 무방비 상태에 빠진다.
사실 및 진실의 조작과 이에 대한 책임 회피는 의외로 간단하다. 극히 지엽적이어서 참과 거짓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지만 감정적인 논란이나 선정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사실 하나만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고, 대중의 관심이 시들해질 때에 비슷한 성격의 사실을 계속 들고 나온다. 혹시 오보나 조작이 탄로 날 때를 대비해 중간에 반대되는 주장을 하나 끼워 넣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 된다.
언론의 보도에는 반드시 의도가 있다. 진실을 밝혀 정의를 추구하거나 진실을 감춰 불의를 덮든지, 기득권이나 광고주, 비슷한 성향의 계층을 대변하고 반대층을 공격하여 이익을 얻으려하든지, 의도 없는 기사는 없다. 하지만 정보의 폭탄에 시달리는 대중은 이를 인식하기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패권경쟁, 코로나19로 시달리는 우리에게 지금은 너무도 중요한 시기다. 지난 2년 동안 언론은 조국, 추미애, 윤미향 사건과 관련하여, 진실의 조명은커녕 사실여부에 대한 판단도 할 수 없고 판단할 가치도 없는 자극적인 사실 조각을 하나씩 꺼내들면서 갈등을 팔아왔다. 도대체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게 무엇인가?
언론의 본령인 직필은 사실을, 정론은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공자나 예수도 쓰레기를 만들 수 있는 언론이 과연 직필정론의 길을 가고 있는지 이제는 대중이 언론에게 물을 때다. 중요하고 시급한 의제를 사실과 진실로 접근하여 전체의 이익을 만들지 않는 언론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앞에서 내가 도형으로 설명한 것은 전(田)자 창문이 달린 집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집이라는 진실의 맥락은 빼고 사실을 도형으로 조각내 설명했다. 과연 내가 사실과 진실을 말한 것일까?
참과 거짓이 뒤죽박죽 섞인 사실의 합이 곧 진실은 아니고, 맥락이 사실이어야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