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예총 익산시회장
김영규 

날씨는 쌀쌀하고 주위환경은 살벌한 계절이다. 엊그제 유난히 추위에 민감한 아내와 함께 가끔 찾아가는 식당에 들렀다. 안주인은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다음 주에 김장하니 들리셔서 준비한 고기와 함께 김치도 드시고, 김장김치도 나누어 드리겠다‘는 정이 넘치는 이야기였다. 동시에 마음이 훈훈해지고 주위환경이 따뜻해 보였다. 몸이 불편한 아내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완치의 모습을 보았다.

오랫동안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삼고 발달한 한국인의 정서는 주로 평화적이고 친화적(親和的)인 것이였다. 농경사회는 혈연(血緣)또는 지연(地緣)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하기 보다는 협동해 가면서 함께 살아가는 평화로운 집단이였다. 그러므로 기쁨이나 슬픔을 함께 나누는 따뜻한 정이 발달했다. 그것은 결국 인정많고 순수한 사회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의 전통사회가 자랑했다 ‘미풍양속’ ‘상부상조’의 기풍도 그 바탕을 이루는 것도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 밑바탕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거다.,

풍부한 감정과 뜨거운 정열은 예술의 발달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아닌가 싶다. 이지가 과학의 발달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졌듯이 정열은 예술을 발달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졌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유구한 문화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며, 특히나 내가 살고있는 익산은 그 대표적 고장이다. 우리문화에서 예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옛날 신분사회에서는 예술가들이 사회적으로 푸대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음악과 미술, 건축과 조각 등 여러분야에서 전통예술의 자랑스러운 유산을 수없이 많이 남겼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예술가들은 다수 배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에 걸쳐서 우리 예술분야에서 자랑스러운 전통을 세우고 지킬 수 있게 된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진 풍부한 감정 내지는 뜨거운 정열에 힘입을 바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인의 전통적 생활속에 흔히 찾아볼 수 있었던 풍류(風流)또는 ‘멋’도 한국인의 풍부한 감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가난한 생활속에서도 노래와 춤을 즐기는 낙천성과 풍류를 촉구하고 엮어내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 청빈낙도(淸貧樂道)라는 말이 그 뜻이다. 물직적 비곤속에서도 보여준 그 정신적 여유는 깔린 생명력의 덕분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농경문화가 산업사회 정보화사회 등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감정의 우세’가 갖는 의의에 엄청난 변화가 올 수밖에 없었으니- 그 첫째로 산업사회 이후 우리에게 발달한 것은 친화의 정서는 사라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게 하는 이간(離間)의 정서였다. 36년간 일제식민 통차하의 설움과 해방이후 남북 분단의 살벌한 이념논쟁, 6.25이후 치열한 사회 경쟁속에서 우리들의 가슴을 채운 것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감싸주는 감정이 아니라 서로 시기하며 의심하고 미워하는 대립의 감정이였다. 급격한 사회 변동속에서 우리는 전통사회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샐운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고 이 새로운 문제들 앞에서 감정이 우세한 우리들의 기질은 드디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부딪히는 가장 큰 비중의 문제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곳에는 어느시대, 어느사회에서나 갈등은 존재 한다,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옛날의 전통사회가 경험한 것보다는 훨씬 규모가 크고 내용도 복잡한 갈등의 문제와 자주 접하게 된다.

오늘의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원망이나 분노가 가득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기쁨 대신 불신과 불평만이 난무하고 남의 잘못은 열올려 비판하고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며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불쾌하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천만송이 국화가 만발한 가운데 우리는 이제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생각의 에너지로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워 불만대신 넉넉한 마음으로 남을 탓하는 마음 대신 자신을 반성하고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상대를 관용으로 대하고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이 세상을 꽃밭으로 만드는 위대한 열쇠다” “사랑은 최대의 모순을 융화하고 천지(天地)를 통합하는 길을 알게한다”고 괴테는 말했으며 “기쁜 마음으로 행하고 행한 일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했다.

이제는 사랑의 대상을 인간이나 경제적 부, 명예나 부귀영화에 두지 말고 우리 지역의 문화, 예술이나 역사유산, 유물에 둘 수 있도록 바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