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숲교회 담임목사

강남웅 목사

우리는 세 가지 시간대를 동시에 살아갑니다. 하나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과거입니다. 두 번째는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기길 희망하면서 사는 미래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그런데 시간이라는 개념을 서양에 처음으로 소개한 어거스틴은 인간을 시간적 존재로 규정하면서, 현재만이 의미가 있을 뿐, 과거는 현재 속에 기억으로만, 미래는 현재 속에 기대로만 남아 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단지 직관을 통해서 현재를 느끼고 현재를 살 수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세 가지 물음”이라는 단편 속에서 어거스틴이 말한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옛날에 어떤 황제가 세 가지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만 있다면 자신의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세 가지 물음은 ‘일을 언제 시작해야 할까’, ‘누구와 함께 일을 해야 할까’, 그리고 ‘어떤 일이 가장 중요할까’ 였습니다. 황제는 여러 사람에게 대답을 구했지만 의견이 제 각각이었습니다. 흡족한 해답을 얻지 못한 황제는 은둔생활을 하고 있던 자신의 은사를 찾아갑니다. 그 때 황제의 은사는 산 속에서 도랑을 파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자신이 갖고 있던 세 가지 물음을 말씀드리고 그 해답을 구했지만 은사는 도랑만 파고 있을 뿐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황제가 그만 돌아가려는데 연로하신 은사가 힘들게 도랑을 파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은사의 도랑 파는 일을 잠시 돕게 됩니다. 그때 저 멀리서 한 청년이 피범벅이 되어서 뛰어왔습니다. 불쌍한 마음에 은사와 황제는 그 청년을 정성껏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청년은 황제가 산으로 떠난다는 말을 듣고 적군이 보내서 잠복해 있던 암살자였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경호원들에게 발각되어 경호원들이 쏜 화살에 상처를 입고 도망쳐 온 것입니다. 암살자 청년은 자신을 치료해준 사람이 황제인 것을 알고는 백배 사죄하면서 용서를 빌고 서로 화해합니다.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려던 황제는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은사께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합니다. 그때 은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자네가 나를 돕지 않고 일찍 돌아갔으면 저 청년에게 살해를 당했을 것이니 도랑을 파고 있을 때가 가장 좋은 때였고, 자네가 나를 도운 것을 보니 그 순간에 내가 자네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고, 저 청년을 치료해 주지 않았으면 청년도 죽고 자네와 화해도 하지 못했을 테니 저 청년을 치료해 준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이 주는 교훈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고, 그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지혜입니다. 톨스토이 역시 어거스틴처럼 우리는 현재만을 다룰 수 있고,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을 직관적으로 행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한 농부가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해서 그 결과 많은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룬 이 농부는 이제 창고를 짓고 그곳에 곡식을 저장해 놓고 앞으로 부자로 편하게 살기 위해서 미래를 설계합니다. 하지만 그 날 밤에 그 부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한 부자의 비극을 비유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코로나19로 인하여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힘든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이나 미래를 찬란하게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입니다. 그렇습니다. 덥고 힘든 날 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귀한 일이라 믿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내가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인물(VIP)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모이면 훗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고, 지금 이 순간이 결국에는 희망찬 미래로 인도하는 디딤돌이 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과거에 얽매여서 또한 장담할 수 없는 미래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라는 소중한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지혜롭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