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수훈
옛날 남녀 간 사랑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익산에도 백제 때 서동과 선화의 천년 사랑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애절한 사랑 금마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이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서있다. 칠월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듯이,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은 음력 12월 마지막 날 자정에만 결빙된 냇물 위를 건너서 만남을 이루고 제자리로 돌아간다고 한다. 다시 회포를 풀려면 1년을 또 기다려야 하는 애절한 사랑도 전래되고 있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율시에 뛰어난 소세양과 최고 여류시인 황진이의 사랑이야기도 아름답다. 연인의 로맨스가 임방의《수촌만록》에 한시로 수록되어 있다. 月下庭梧盡 霜中野菊黃
樓高天一尺
人醉酒千觴
流水和琴冷
梅花入笛香
明朝相別後
情意碧波長 달 비치는 뜰에는 오동잎 다 졌는데, 서리 맞은 들국화 누렇게 피었네. 누대는 하늘보다 한 자 더 높고, 사람은 술 천 잔에 취해버렸네. 거문고 소리에 맞추어 흐르는 물은 차고, 매화 향기 피리 속에 들어와 향기롭구나. 내일 아침 서로 헤어진 뒤면, 그리는 마음 푸른 물결처럼 길리라. 이 시를 소세양이 황진이한테 받아보고서“내가 떠나가면 사람이 아니지”하고는 황진이 곁에 다시 머물렀다고 한다. 소세양이 황진이와 개성 송도에서 30일 기간을 정해놓고 계약 연애를 했었다. 이 둘이 헤어질 날이 다가오자 소세양이 이 시 한 수로 사랑 앞에 무너졌다는 야사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가수 이선희의 <알고싶어요>가 유행하면서 황진이의 시를 표절했다는 논란에 한때 휩싸인 적이 있었다. 그 노래 가사는 이렇다.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꾸시나요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하루 중에 내 생각 얼마큼 많이 하나요 내가 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 내가 많이 어여쁜가요 진정 날 사랑하나요 난 정말 알고싶어요 얘기를 해 주세요 황진이가 소세양에게 보낸 시와 이선희 노래 <알고싶어요>는 전혀 내용이 다르다. 문제는 다른 데서 불거져 나왔다. 이재운이 역사소설《청사홍사》에서 황진이가 소세양을 개성에 더 머물도록 위하여 쓴 가공한 시 <야사하(夜思何)>가 발단이 된 것이다. 그 소설 속의 한시를 풀이하면 이렇다. 蕭寥月夜思何事 寢宵轉輾夢似樣 問君有時錄妄言 此世緣分果信良 悠悠憶君疑未盡 日日念我幾許量 忙中要顧煩或喜 喧喧如雀情如常 달 밝은 밤이면 그대는 무엇을 생각하시나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붓을 들면 때로는 제 이름도 적어 보시나요 저를 만나 기쁘셨나요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하루에 제 생각 얼 만큼 많이 하나요 바쁠 때 얘기해도 제 말이 재밌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노래 가사와 소설 한시가 매우 유사하였기에 오해는 충분하였다. <알고싶어요> 노래는 1986년에 발표되었고,《청사홍사》소설은 1996년에 출간되었다. 이재운은 이 노래 가사를 한시 <야사하>로 번역하고 이를 마치 황진이가 지은 것처럼 둔갑시켰다. 항간의 소문은 풍문에 불과하였다. 이재운이 <알고싶어요>의 작사가 양인자로부터 허락을 받고 인용한 것으로 밝혀지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수촌만록》의 고서 속에 잠자던 황진이의 시는 400년이란 시공을 초월하여 <야사하> 때문에 현대적인 감성으로 되살아 나면서 선남선녀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황진이가 사모한 선비가 소세양으로 밝혀지면서 낭만적인 사랑이 더욱 가슴을 뜨겁게 파고든다. 이리 보아도 내사랑 저리 보아도 내사랑 어화둥둥 내 사랑아 익산은 예로부터 사랑이 이루어지는 고장이다. 소세양은 왕궁 용화산 자락 양지바른 곳에 묻혀 있다. 국도 1호선을 지날 때마다 그 옛날에 나도 태어나 그런 사랑 한번 해봤으면 하고 고개를 도순저수지 위쪽으로 돌려보게 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