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산시민 유성무
얼마 전에 2001년작 영화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봤다. 처음 만난 사람을 우연처럼 다가온 운명으로 믿고 결국 7년 만에 재회하는 두 남녀의 로맨스를 그린 통속적인 내용이었다. 영화를 통해서 ‘우연히’ 세렌디피티를 생각해본 계기였다. 세렌디피티의 사전적 의미는 ‘뜻밖의 재미(기쁨)’, ‘운 좋게 또는 우연히 발견하는 능력이나 행운’이다. 이 말은 18세기 영국의 소설가 호레이스 월폴이 ‘우연히’ 사용함으로써 생겨났다고 한다. 그는 모험에 나선 스리랑카 왕자 세 명이 우연한 사건들을 통해서 지혜와 용기를 얻는다는 내용의 동화인 <The Tree Princes of Serendip(세렌디프의 세 왕자)>를 봤던 모양이다. 그 후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동화의 키워드인 우연성을 ‘세렌디피티’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원래 ‘우연성’을 의미하던 세렌디피티란 말은 20세기 들어서 과학과 사회학 개념으로 바뀐다. 미국 사회학자로서 과학지식사회학의 지평을 연 로버트 킹 머튼이 1946년에 ‘세렌디피티 패턴’을 발표했다. 대부분의 발견 또는 발명, 깨달음 등은 준비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우연에 의해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즉 어떤 문제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차원이 다른 발견 또는 발명,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머튼 이후 세렌디피티 패턴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면서 창의적 문제해결을 도모하는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1998년 미국의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은 두뇌 MRI 영상을 보던 중에, 사람이 어떤 문제에 골몰하는 때보다 인지활동을 그칠 때 오히려 평소보다 활성화 되는 부위들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 부위들은 두뇌활동의 결과들을 정리하고 통합하는 부위였다. 라이클은 이런 작용을 하는 뇌 부위를 ‘휴지 상태 네트워크’ 또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고 명명했다. 즉 오랫동안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았던 ‘세렌디피티 패턴’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세런디피티 원리는 기술과 창의력이 가치를 결정하는 기업세계에서 적극적으로 연구됐다. 성공한 기업 특히 혁신으로 성공한 기업들을 연구한 결과 세렌디피티 원리가 문화로 자리 잡고 있음이 발견됐다. 이후 학자들과 기업들은 세렌디피티를 의도적으로 기업의 문화로 만들기 위한 방법론을 개발했는데, 여기서는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세렌디피티를 만드는 환경’을 중심으로 방법을 소개하겠다. 첫째,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서 사색할 수 있도록 하라. 조직원이 항상 일상에 쫓기는 환경에서 세렌디피티가 나올 수 없다.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하고 사색하며 비일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둘째, 조직원간의 우연한 소통 기회를 늘려서 세렌디피티 가능성을 높여라. 개방된 공간을 조성해서 만남을 촉진하고, 이런 소통공간에 조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프로그램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셋째, 발견을 실행으로 연결하라. 부단한 실행과 시도를 통해서 세렌디피티의 성공확률을 높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연히 생기는 결정적 기회 포착능력을 확보하고, 혁신적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실행하는 문화를 구축하라는 것이다. 세렌디피티는 ‘우연을 통한 창의적 문제해결’이다. 관건은 탄탄한 문제의식을 통해서 세렌디피티를 문제해결의 기회로 전환시키는 능력이다. IT혁명을 만들어낸 기초기술의 대부분을 개발한 곳은 복사기 전문기업이었던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였다. 그러나 정작 제록스는 IT혁명의 주역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수많은 IT전문기업들에게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제록스의 연구성과 상업화 실패는 조직 차원의 세렌디피티 관리 부재 때문이었다. 세렌디피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하나다. 공조직이든 사조직이든 모든 조직은 집단적인 혁신을 통해서 진화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혁신에는 대부분 세렌디피티가 작용한다. 그런데 조직의 혁신능력은 리더십에 좌우된다. 위에서 언급한 3가지 환경요소를 조성하고 조직 차원의 혁신을 관리할 수 있는 리더십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 리더십의 중심에는 소통이 있다. 조직 내에 세렌디피티를 장려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조직원들에게 동기부여 하며, 세렌디피티를 목표지향적으로 관리하려면 조직 내외부를 망라하는 리더의 부단한 소통능력이 필수적이다. 집단적 차원에서 보면 세렌디피티는 그냥 생기지 않는다. 소통을 통해서 조직원들에게 강한 믿음을 주는 리더의 의도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세렌디피티를 통한 발전이 가능하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문제해결 노력을 장려하며, 도전을 밀어주는 리더십이 참으로 절실한 때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