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면장

채수훈

장수 뜸봉샘에서 발원한 금강 물줄기가 전북, 충북, 충남 내륙을 휘휘 돌아서 마지막으로 강물을 쏟아내는 하구 근처에 웅포가 있다. 곰나루는 고려 때 진포대첩과 용왕사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고려 말 왜구 침략이 빈번했는데 특히 우왕 때 극심했다. 1380년에 왜구 2만여 명이 5백여 척의 배를 이끌고 서해까지 거슬러 올라와 금강 기슭의 임피 진성창을 습격하였다. 왜적은 진포에 큰 밧줄로 배를 묶어놓고 군사를 나누어 지키게 하였다. 진포는 금강 하류 지역의 서천군 남쪽에 있는 포구를 통칭 되었다. 왜적은 왜선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충남과 익산 내륙에 침투하여 노략질을 자행했다.

고려 조정은 최무선 장군이 개발한 최신병기 화포로 진포에 정박해 있는 배들을 화포로 불사르고 왜적을 선멸했다. 우리나라 최초 화약을 사용한 세계해전사인 1380년의 진포대첩이다. 왜구는 퇴로가 차단당하자 충청도와 경상도 내륙 깊숙이 침투하여 온갖 약탈을 일삼았다. 전북 남원의 운봉을 거쳐 황산에 이르렀는데, 그곳에서 이성계, 변안렬 장군이 지휘하는 고려군에게 참패를 당한 후 황산대첩을 끝으로 궤멸 된다.

진포대첩의 격전지 웅포는 금강 기슭에 있는 포구다. 강줄기가 휘휘 도는 곳에 야트막한 야산이 있다. 이곳 언덕에서 바라보는 금강은 호수처럼 고요히 잠겨있어 마음을 차분하게 적시어 준다. 해질 무렵 노을빛이 금강에 반짝반짝 빛나서 왜 강 이름이 비단결 같은 금강인지 눈빛으로 느낌을 준다.

웅포 주민들의 구전에 의하면 400여 년 전부터 용왕사(龍王祠)가 있었다고 한다. 그 형태는 정면 2칸과 측면 2칸의 나무마루에 기와지붕이었다. 원래 진포대첩 때 전사한 군인들의 원혼의 넋을 기리기 위한 제를 지낸 곳이다. 그러면서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고기잡이 나가는 어부의 풍어와 조운선의 안전을 위하여 용왕제를 함께 지내 왔다. 처음에는 위령제가 주목적이었으나 주민들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풍어제가 더 가미되었다고 한다.  
용은 물을 다스리는 신으로서 예로부터 신성시했다. 금강 변에 어부들을 위한 용왕사가 위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랜 비바람에 쇠락해온 사당은 1945년에 태풍으로 무너졌다. 주민들이 다시 일으켜 세웠는데 관리 소홀로 방치되어 왔다. 1982년에 용왕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로 육각형 정자를 세우면서 덕양정(德讓亭)이란 현판을 내 걸었다. 이 정자는 원래 웅포보건지소에 자리했던 국궁장에 있었다. 그 폐허지를 어느 틈에 파고들어서 새둥지를 틀었다. 마치 고려 때 불교 사찰 자리를 조선 때 유교 묘지가 독차지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2005년에 주민들의 복원 노력에 의하여 목재 정자로 다시 건립하였다. 덕양정은 원래 위치 부근으로 이전하면서 비로소 용왕사라는 현판을 내걸었다.

하지만 사당 터에서 정자로 덕양정에서 용왕사로 현판만 바뀌었지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나무 밑에‘용왕사터’라는 안내 표지석만이 무언으로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정자 주변은 금강을 조망하기에 절묘한 자리이지만 사방으로 나무가 우거져 금강의 아름다운 풍광이 가려져 있다. 아름드리 팽나무 사이로 해질녘 노을은 서해 5대 낙조대로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웅포는 조선말까지 금강 하구를 생활터전으로 삼으면서 물자를 실어 나르는 집하지로 익산 3대 포구로 전성기를 구가해왔다. 일제강점기 호남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운송, 교통 기능을 내어주었다. 1990년 금강하구둑이 완공되자 해수 유통이 막혀버려 포구로서의 기능을 완전 상실하였다. 이로서 해상교통과 고기잡이가 쇠퇴하면서 용왕사도 그와 함께 저물어 갔다. 진포대첩 전사자들과 고기잡이 어부들의 원혼이 풀어진 것일까 사라진 것일까. 

군산시 성산에 진포대첩 기념탑과 내항에 진포해양테마공원있다. 충남 서천군에 진포대첩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웅포에 진포대첩 전사자의 제를 지낸 용왕사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언덕 밑의 금강 물만 예나 지금이나 말없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웅포 용왕사가 진포해전의 자궁이 될 수는 없을까. 언제 용왕사가 복원되어 용왕제를 지내며 옛 역사문화의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금강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