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道不行 不如醉 유도불행 불여취
有口不言 不如睡 유구불언 불여수
先生醉睡 杏花陰 선생취수 행화음
世上無人 知此意 세상무인 지차의』
도가 있어도 행하지 못한다면
술에 취하는 것만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면
잠을 자는 것만 못하네
선생은 술에 취해
살구꽃 그늘에서 잠들었는데
세상엔
이 뜻을 아는 사람이 없다네.

이 찬문은 최자가 쓴 《보한집 補閑集》에 전하는 <취수선생 화상찬>으로 안치민의 초상을 초상화가 이기李琪가 그리고 직접 쓴 찬문이다.

이렇게 멋진 찬시가 들어있었다면 그 초상화 또한 얼마나 멋진 것이었을까?

《고려사》에 의하면 궁궐에는 왕과 왕비의 초상을 봉안하는 경영전이 있었으며 임금의 초상은 여러 사찰에 따로 봉안되었다. 또 고려는 건국과 동시에 공신들의 초상을 제작하여 후삼국을 통일한 직후 봉진사에 태조의 영정을 가운데 두고 동·서 벽에 37 공신상과 12 장군상을 그려 걸었다고 한다.

귀족과 학자의 초상도 많이 제작되어 사당에 봉안되었음을 《고려사》 <열전>과 문집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고려 후기 문신인 안치민의 초상화 이야기를 보면 사라진 고려시대 초상화가 더욱 아쉬워진다.

안치민의 생몰년은 미상이지만 고려 의종·명종 연간의 문인이었다. 그는 경주 토박이 관료 집안 출신으로 호는 취수선생이라 하였다. 뛰어난 문장가로 글씨와 그림에도 조예가 있었는데. 그는 글이란 인륜을 표현하고 시대와 사회의 교화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고문정신古文精神을 견지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차라리 취수선생이 되고픈 인생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생각할 때 이 초상화가 현존해 있다면 오늘날에 큰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