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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식 할머니

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장,

(사)삼동인터내셔널이사장

김영주

‘황금연못’이란 TV 프로그램이 있다. 왜 ‘황금연못’이라 했을까. 궁금했다.

황금(黃金)은 누런빛의 금을 뜻한다. 돈이나 재물을 비유하고, 귀중하고 가치가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연못은 넓고 오목하게 팬 땅에 물이 괴어 있는 곳이다. 늪보다 작다. 그렇다면 ‘황금연못’은 귀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닐까.

이 프로그램은 역경의 세월을 살아온 대한민국 시니어들의 다양한 인생과 그 속에 녹아있는 삶의 지혜를 젊은 세대와 함께 나누며, 진솔하고 유쾌한 삶의 이야기를 소통하는 KBS의 신개념 토크쇼이다.
인생의 녹아있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곳이 ‘황금연못’이다.

필자가 ‘황금연못’을 시청하면서 인상 깊게 가슴 울린 이야기 하나가 있다.
오복식(吳福植) 할머니 이야기이다. 그는 현재 69세이며, 78세의 남편과 50년 전에 결혼하여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달동네에서 고물상을 하고 있다.

그들이 살아온 지난날은 휴지통에 누워있는 구겨진 종이처럼 삶의 질곡이 너무도 많았다. 6남매 중 장남인 할아버지 박기천 씨는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부잣집 머슴살이를 하며 10년을 살았다. 할머니 오복식 씨는 태어나자마자 입양 보내졌는데, 입양 보낸 가정이 끼니를 이어가기 힘든 가정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배가 고팠고, 남이 먹는 음식이나 쓰레기통을 뒤져 주워 먹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40년 전 신림동 마지막 달동네에서 고물상을 시작했다.
할머니는 고물상을 하면서도 다른 힘든 일을 가리지 않았다. 남의 집 똥을 퍼주는 일도 하며, 아픈 남편 뒷바라지도 했다. 그래서 점차 형편이 나아지자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달동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손수 김장을 하여 나누는 일을 십여 년째 하고 있다. 폐지를 주워 리어카를 끌고 오는 분을 밀어주고, 커피를 대접하고, 폐지값을 더 많이 쳐주며 자기 이익을 탐하지 않으나 얼굴엔 항상 미소가 가득한 삶을 보냈다.
달동네에서 그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필자가 오복식 할머니에게 감동이 되었던 것은 단순히 이웃에 대한 쉬지 않는 봉사 때문이 아니다. 두 무릎과 허리까지 수술했지만 ‘아이고 신난다’를 말버릇처럼 외치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하며 즐거워하고 남에게 행복의 웃음을 전해주는 그 모습에 반해서이다.

‘신난다’는 것은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제일 많이 쓰는 말이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다. 왜 그럴까.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꾸밈이 없고 순박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어디서 그런 행동이 나올까?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마음을 비우고 살기 때문이라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롤 모델 (role model)은 할머니란다.
할머니는 때 묻지 않고 꾸밈이 없는 베품의 보살이었다.

베품을 불교에서는 보시(布施)라 한다.
보시는 우리나라 불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보살의 실천행이다.
보시 중에는 유상보시(有相布施)와 무상보시(無相布施)가 있다.
유상보시는 베풀고 베풀었다는 생각이 남아 있는 보시고, 베풀고도 그 베풀었다는 생각이 없는 보시가 무상보시다. 그래서 유상보시는 복이 한정되어 있고, 때로는 상대방이 갚지 않으면 원망심이 일어나 오히려 죄업을 지을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무상보시라야 영원한 복이 되고 은혜가 된다.

할머니의 베품은 무상보시였다.
신명나고 천진한 아이들의 웃음 같은 즐거움에서 생성된 베품이기 때문이다.

소태산 대종사(원불교 교조)는 무상보시를 ‘묻어준 거름’이라 했다. 또 ‘묻어준 거름은 그 기운이 오래 가고 든든하다’고 했다.

요즘 사회는 보여주기식의 선행이 대세다. 진정한 선행은 마음 깊숙한 심천(心泉)에 나오는 샘물이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는 말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드러내지 않는 것도 대단한 인격의 내공이다. 그러나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하는 것도 진짜 무상보시는 아니다. 진짜 무상보시는 입의 근질거림도 마음의 흔적도 지워진 상태를 말한다.
오복식 할머니의 마음에는 입의 근질거림도 마음에 흔적도 없이 보였다.

인간의 삶은 알고 보면 ‘오십보백보’다.
내일은 뭘 먹을까, 모레는 뭘 입을까. 그다음 날은 또 뭘 마실까. 걱정은 끝이 없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다.
마음을 비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 명예, 권력의 욕망이 솟아난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마음으로 거머쥐는 것. 불교에서는 그 모두를 ‘색(色, 형상)’이라고 부른다. 지지고 볶는 우리 안의 온갖 감정이 모두 형상이다.

우리는 그것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거머쥔다. 그것이 집착이다. 그래서 붓다는 “있는 게 아니야. 그건 없는 거야. 있는 것이 없는 것(色卽是空)이다”라고 했는데, 우리는 “아니야. 이건 진짜 있는 거야. 있는 것이 있는 것(色卽是色)이다”라고 받아친다. 그래서 ‘빈 곳(空)’이 드러나질 않는다.

예수는 악마를 세 차례나 무너뜨렸다. 악마는 ‘내 안의 욕망’이다. 왜 그랬을까. 그게 ‘빈 곳’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걸 무너뜨려야 ‘빈 곳’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없이 계신 하느님’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드러나면 알게 된다. 모든 색 속에 이미 ‘빈 곳’이 있음을 말이다. 모든 형상 속에 이미 하느님이 계심을 말이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밤골 마을에는 정과 웃음이 넘쳐난다.
‘아이고 신난다’를 외쳐대며 콩대 튀듯이 다니는 오복식 할머니 때문이다.

텅 빈 운동장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외롭고 힘든 삶이지만 정이 넘치고, 타지에선 어깨 제대로 펴지 못하는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큰소리치며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용기를 닝겔(Ringer)처럼 전해주는 오복식 할머니의 삶이 시비이해(是非利害)의 복잡한 사회적 틀 속에서 진정한 행복, 더불어 사는 행복을 찾는 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