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애

  오늘도 땀으로 가득찬 방호복을 입고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을 살려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당신. 뙤약볕 아래에서 온몸으로 먼지를 들이마시며 세상에서 가장 시원하고 멋있는 길을 만들어내는 당신. 만취해서 자신이 누구한테 삿대질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끝까지 보호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당신. 말도 안 듣는 녀석들을 앉혀놓고 한 명이라도 더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해 강의하는 당신. 말귀도 알아듣지 못하고 몸짓마저 정상이 아닌 아이들을 끝없이 사랑으로 보살피는 당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거북이 목이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스트레칭 한 번 할 새 없이 일하는 당신. 시절의 여파로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린 생업을 안간힘을 써가며 지켜내고 있는 당신.

  자식을 위해 손주를 키워주며 아픈 허리와 무릎쯤은 손주의 재롱에 다 날려버리는 당신. 퇴직을 하고 이제는 쉬어도 좋으련만 날마다 경비실에 배달되는 택배를 친절하게 돌려주는 당신. 그리 건강하지 않은 몸이지만 자신보다 더 노약한 어르신들을 정성으로 보살펴주는 당신. 비좁은 계산대 안에서 하루 종일 서있느라 허리와 다리가 아파도 줄 서있는 손님마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같은 인사말을 친절하게 반복하는 당신. 일주일에 겨우 하루를 쉬고서도 날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몸을 너끈히 씻어주는 당신. 손님들 머리 손질해 주다가 정작 자기 머리는 파마할 시간도 없는 당신. 하루 종일 먼지와 함께 살아야 하지만 맡겨놓은 옷마다 칼주름을 잡아놓고 방금 전에 새로 산 옷처럼 고쳐놓는 당신. 무거운 상자를 들고 메고 다니느라 어깨와 손목에 파스자국이 하루도 생기지 않는 날이 없지만 어느 집 현관 앞에 놓인 감사쪽지와 요구르트에 하루의 피로가 다 가시는 당신. 양손에 여기저기 기름에 덴 상처의 흔적이 다 아물지도 않았지만 또다시 걸려오는 주문전화가 그저 반가운 당신. 깊게 팬 얼굴의 주름과 울퉁불퉁 튀어나온 손발의 핏줄도 자식들 먹일 농사를 짓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당신. 아픈 엄마한테는 가보지도 못해서 전화통을 붙잡고 목이 메어도 시댁의 행사에는 웃으며 가야하는 당신.
 
  머나먼 나라에서 보고 싶어도 오갈 수 없는 이 시절에 버거운 하루를 버텨내고 가족들 사진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당신. 나의 생명조차 언제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사지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거뜬히 치료해내는 당신.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어찌할 바를 몰라 비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그들의 장발장이 되어주는 당신. 세상의 불의에 맞서 정의를 전달하기 위해 부딪히고 멍들어도 끝까지 사건을 취재하는 당신. 그리고 그 모든 정의를 국민들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당신. 세상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이 나라의 정치에도 변화가 오리라는 것을 믿으며 가슴에 단 뱃지에 책임을 다하는 당신. 불행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뼈저리게 참회하고 이제는 당당하게 세상과 마주할 준비가 된 당신.

  매일 밤 그리고 이른 새벽마다 우렁각시가 다녀간 듯 온 대한민국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당신.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했지만 한 발 한 발 꿈을 향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당신. 부모도 없이 세상에 던져진 채 이제는 홀로서기마저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지만 그러나 그 홀로서기마저 마침내 멋지게 해내고야 말 당신. 남들과 다른 몸으로도 결코 동정이나 연민을 바라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정확하게 해내는 당신. 화재가 일어날 때마다 가족들이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결국은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자신의 온몸을 다 바치는 당신. 어느 날인들 그립지 않은 날이 없겠지만 칠 년이 지난 지금도 차가운 바닷물에 떠나보낸 자식의 사진을 보며 멍든 가슴을 달래는 당신. 무슨 운명의 장난으로 몹쓸 전염병이 사랑하는 가족을 앗아갔지만 남은 가족을 위해 슬퍼할 겨를조차 없는 당신.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 와서 억척같이 일하고 공부를 하더니 이제는 아예 한국의 홍보대사가 되어버린 당신. 매일같이 좁은 벙커 안에서 구름을 이불삼아 쪽잠을 자고나도 승객들 앞에서는 입술이 귀에 닿도록 미소를 짓는 당신. 어쩌면 이 시절 통장의 잔고가 가장 가벼울 당신이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만큼은 창가에 비친 새벽별이 증거가 되어주는 당신. 마음에 드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결코 세상의 돈벌이와 타협하지 않는 당신.  나의 손에 트로피가 쥐어질 그날을 상상하며 은막의 뒤에서 겪어야 하는 서러움을 거뜬히 이겨내는 당신. 그저 평범해 보였던 나무와 쇠와 돌조차도 손에 닿기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건물과 집으로 빚어내는 당신. 오늘도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온 몸에 땀을 흘려가며 심신을 연마하는 당신. 호숫가에 노니는 우아한 백조도, 호두까기 인형의 귀여운 몸짓도, 핏줄이 여기저기 튀어나온 발가락의 피나는 노력과 헌신의 결과였을 당신.
 
  국민들이 아무리 나의 뜻을 몰라준다 할지라도 꿋꿋이 한 길을 가야만 하는 당신. 조국의 땅과 바다와 하늘을 지켜내고 누운 머리맡에, 오늘도 엄마가 보낸 편지보다 여자 친구 사진에 더 손이 가는 얄미운 당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의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당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별 어딘가에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 온 생애를 다 바치고 있는 당신.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 나가고 있는 우리들 각자가 영웅이며 우리는 이 모든 당신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