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창업한 이성계가 젊었을 때 꿈을 꿨다고 한다. 신인(神人)이 나타나 금으로 된 자, 금척(金尺)을 주면서 장차 왕이 돼 세상을 바로잡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도 금척을 받는 꿈을 꿨다고 한다. 자는 길이를 재는 도구로서 언제 어디서나 정확함을 생명으로 한다. 세상을 차별 없이 재단하는 것이 통치자에게 주어진 천명이라는 은유일 것이다.
조선시대 왕명을 받들어 민생을 살폈던 암행어사에게는 놋쇠로 만든 자, 유척(鍮尺) 두 개가 주어졌다고 한다. 하나는 매질을 할 때 쓰는 형구의 규격을 재기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세금을 매길 때 쓰는 자가 정확한지 대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 정확한 규격의 자는 형벌과 조세 정의를 위해 꼭 필요한 도구였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유스티티아)는 눈을 가린 채 양손에  칼과 천칭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눈을 가린 것은 공평무사를, 칼은 처벌의 엄정을, 천칭 저울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의미한다. 정의로움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한 형상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세종 때 국가에서 대저울(저울대에 눈금이 새겨진 저울) 1,500개를 만들어 전국 각지에 배포했다고 한다. 당시 저울이 정확하지 않거나 저울을 속여 부당이익을 취하는 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세종은 정기적으로 국가 공인 저울을 점검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인들이 사용하는 저울도 연 2회 점검하여 저울을 속이는 자들을 엄벌했다고 한다.
조선 말기 거상 임상옥은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이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즉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말이다. 바르다는 것은 저울과 같이 정확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자와 저울은 정확성과 공정성을 상징한다. 인간이 서로 물질적 가치를 교환하기 시작하면서 최초로 고안된 측정도구가 자와 저울이라고 생각된다. 서로 인정할 수 있는 측정 기준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와 저울은 상호의 이해관계를 공평하게 측정하기 위한 의사소통 도구라고 하겠다.
측정이란 의미의 한자식 표현인 도량형(度量衡)은 길이, 부피, 무게를 재는 방법 또는 도구를 뜻한다. 도(度)는 길이, 량(量)은 부피, 형(衡)은 무게를 말한다. 길이를 잴 때는 자를, 부피를 잴 때는 되를, 무게를 잴 때는 저울을 도구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서양에도 도량형과 같은 의미를 갖는 말(영어로는 weight and measure)이 있지만, 도량형이란 표현이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뜻을 나타낸다.
전통적으로 도량형은 동양에서는 척관법(尺貫法, 길이는 척, 부피는 승, 무게는 관을 기본단위로 측정하는 방법)을, 유럽에서는 야드파운드법(길이는 야드, 무게는 파운드를 기본단위로 측정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프랑스대혁명 이후 미터법(길이는 미터, 부피는 리터, 무게는 킬로그램을 기본단위로 측정하는 방법)이 등장했고,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에서 미터법을 도량형의 표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프랑스대혁명 때 민중이 가장 먼저 요구했던 사항 중 하나가 새로운 도량형의 제정이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약 800개의 명칭으로 25만개나 되는 도량형 단위가 쓰였다고 하니, 교역과 조세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극에 달했던 모양이다. 나폴레옹은 1812년 미터법을 공표하면서 “제국은 순간이지만, 미터법은 영원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도량형은 일반적인 법규보다 구속력과 지속성이 강력한 사회제도로서, 세상을 재는 방법의 약속인 것이다.
도량형은 세상이 질서 있게 돌아가도록 만드는 사회적 규범이다. 인류가 오래 전부터 도량형을 이용한 것은 우르남무 법전(기원전 2000년 경)이나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700년 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속이는 행위를 가혹하게 처벌하는 고대 법조항을 볼 때, 도량형을 문란케 한 자를 엄중하게 다스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도량형 정비는 국가적 의제였다. 그래서 도량형의 정비는 군주나 정치가의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도량형은 조세 및 경제 운영의 근간인바, 도량형을 문란케 하는 행위는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것과 다름없었다. 근세 국가까지 도량형을 속이는 자를 사형, 유배 등 혹형에 처한 이유다.
현대사회에서는 도량형으로 쉽게 판별할 수 있는 물질적 교환만이 있는 게 아니다.  각종 정보와 서비스처럼 가치와 품질을 표준화된 기준으로 측정하기 힘든 거래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물질적 교환 대상이 정보 및 서비스와 결합되면서 가치와 품질을 표준적인 기준으로 측정하는 것 자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정보와 서비스가 거래 당사자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도 말이다.
따라서 정보와 서비스, 특히 상업적 목적으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정보와 서비스에 대하여 정확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잣대와 저울을 들이대야 한다. 나는 이것을 ‘비물질적 도량형’이라고 부르고 싶다. 비물질적 도량형을 정립하여 국가의 근간을 파괴하는 자들에게 징벌적 처벌을 함으로써 사회의 안정 및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자와 저울이 정확하고 공정해야 세상이 바르게 돌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