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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지역진흥원장 황만길

요즘 극장가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한마디로 북새통이다. 성탄절 전후의 특수에다 연말연시를 맞이해 극장을 찾는 관객이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또한 제법 잘 만들어진 국내외 영화들로 다양한 관객층을 흡수할 수 있는 조건도 맞았다고 본다.

하지만 연말 극장가에 사람들을 모은 것은 아무래도 노무현대통령과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 덕분이다. 영화 변호인은 예상을 뛰어넘는 돌풍을 일으키면서 전날 예매를 하지 않으면 다음 날 저녁에나 관람이 가능할 만큼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좌석이 없어 변호인을 관람하기 어렵게 되면 다른 영화로 대체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화가 관객유치에 성공하고 있다. 변호인 덕분에 다른 영화도 일정한 흥행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영화 변호인이 이처럼 관객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고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송강호, 곽도원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이 한 몫 하고 있다는 평가다. 송강호, 곽도원 등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연기력이 이미 검증된 배우들이다. 송강호는 다양한 영화에서 그 연기력을 선 보였고 곽도원은 차가운 카리스마로 무장한 놀라운 조연이다. 빼어난 연기력이 변호인 흥행돌풍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둘째, 탄탄한 구성으로 시나리오 자체가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허술한 구성이 한국 영화의 가장 큰 한계라는 지적이 많았지만, 관객이나 평론가들의 평가를 보면 영화 변호인의 평가는 후하다. 그런 점에서 좋은 시나리오와 탄탄한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 변호인의 성공에 기여를 한 게 분명하다.

셋째, 영화의 내용 자체가 관객들에게 울림과 감동을 주는 점도 돌풍의 원인일 수 있다. 1980년대라는 시대는 혼돈과 암흑의 시대였다. 박정희 군부독재가 김재규의 총탄에 사라지는 듯 했으나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으로 또다시 군부독재는 연장되었고 정권 장악을 위해 용공조작과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등 피를 부르는 시대였다. 이런 시대상을 반영하고 정권의 희생양이 되어간 민초들의 삶을 대변하는 변호인은 동시대를 살았건 그렇지 않건 공통적인 감동과 여운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영화 변호인이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영화 변호인은 인간 노무현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인간 노무현은 대중과 호흡하고 대중의 아이콘으로서 파란만장한 정치 일생을 살았다. 그는 부림사건을 변호한 후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어 법정의 변호인보다 길거리의 민주화운동가로 진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정계에 입문하고 청문회 스타가 되는 과정 모두 대중의 정서를 읽어내고 가야할 방향과 목표를 명확히 제시했다. 그는 시대를 앞서 대중이 요구하는 바를 실천함으로써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선점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안정된 당선 지역을 버리고 연거푸 부산에서 출마함으로써 고질적 병폐인 지역감정과 맞선 점, 야인시절에도 지방자치 개혁을 위해 연구소를 만들어 실질적인 지방자치를 위해 노력했던 점, 대선 과정에서 돼지 저금통 모금, 당선 후 탄핵사태, 고향 봉하로의 낙향, 억울한 죽음 등 현대사에 있어 가장 드라마틱한 일생을 살다간 노무현의 이야기라는 요소가 대중들로 하여금 다시금 노무현을 추억하고 회상하게 만들었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자발적 대중을 일생동안 모이게 한 예가 없고 사후에도 대중들의 뇌리와 가슴에 불씨로 남아 대중들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사례도 없다. 영화 변호인은 대중들의 인간 노무현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담고 있어 대중들을 위한 목소리를 대변하려 했던 그의 삶을 반추하는 하나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억울하게 죽은 노무현을 회상함으로써 자신들의 과오를 씻어내는 의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폭압과 일방통행식 독불 정치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반감도 작용했다. 수구 보수세력과 기득권만을 위한 통치로 정치는 실종되고 대중들의 고통은 가중되는 현실의 모순 속에서 대중을 위한 정치를 구현하려 했던 노무현에 새삼 열광하게 된 것이다.

현직 시절 진보, 보수 양측으로부터 부당한 공격으로 인기가 없었지만 그는 전 생애에 걸쳐 가장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던 대통령이다. 결국 “떠난 뒤에야 소중함을 알 수 있다”는 노무현에 관한 얘기는 영화 변호인을 통해 재현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오만과 독선의 정치가 오히려 인간 노무현의 대중을 위한 정치, 대중과 호흡한 정치, 대중을 사랑한 소통의 정치를 그리워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변호인은 그렇게 흥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