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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도둑

지역진흥원장 황만길

중국 원나라 때 극작가인 관한경은 수많은 희곡작품을 남겼다. 그는 탁월한 극작가인 동시에 대학자요, 위대한 문인이었다. 그가 탁월하다는 것은 빼어난 희곡작품을 써 당대 서민층인 백성들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한편, 부패에 물들어 타락한 관리들을 신랄하게 질타하는 등 작품성과 시대정신을 올곧게 견지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위대하다는 것은 지배자들의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권력자의 탄압과 중상모략에도 올바른 글쓰기를 했기 때문이다.

관한경이 지은 「불복로」에는 “나는 아무리 찌거나 삶아도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때리고 볶는다 해도 끄떡없는 생생한 완두콩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어떤 외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정신을 표현한 것이고 견디기 어려운 탄압과 고초에도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인생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관한경은 불굴의 의지와 정신으로 63편의 희곡을 남겼고 그의 희곡작품은 중국역사에 있어 700년 이상 공연되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관한경은 고통스런 글쓰기를 통해 올곧은 삶의 태도를 견지했고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백성들의 삶을 치유하고, 원혼을 달래고, 미래의 희망을 만들기 위해 피땀을 쏟아가며 힘겨운 글쓰기를 지속했던 것이다.

관한경에게 있어 글쓰기와 글이란 자신의 철학과 정신, 가치관, 인생관의 결정체인 동시에 살아있음의 존재양식이었다. 그는 글이란 지식인이 백성을 위해 써야할 가장 유효한 도구인 동시에 지식인이 받은 가장 커다란 축복이라고 여겼을 법하다. 그렇기 때문에 관한경의 글쓰기는 정도를 어긋나지 않으려 했고 자신의 정신세계와 백성의 애환, 지식의 총량이 버무려진 결정체였다.

관한경에게 있어 글쓰기란 목숨을 축내는 작업이었을 법하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축내면서 백성의 삶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글쓰기로 여생을 마쳤다. 글이 목숨 이상이었던 셈이다.

요즘 글쓰기가 유행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너나 할 것 없이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하고 있다. 글쓰기가 유행인데 정작 자신이 쓴 글이 아니고 남의 글을 도둑질하거나 빌리고 있다. 세상의 도둑질이 많은데 글 도둑이 가장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도둑질이다. 배고파하는 도둑질은 봐 줄만 하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자가 그 권력을 유지하거나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 글 도둑을 한다면 이것은 용서받지 못할 도둑질이다.

글 도둑이 심한 경우는 대부분 단체장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남이 쓴 글을 자신이 쓴 것처럼 위장해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하는데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문제투성이 책을 선거용으로 출간하고 여는 출판기념회는 불법행위가 난무하다시피 하는 등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현직 단체장의 경우 대부분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자신이 쓴 것처럼 출간한다는 점이다. 단체장들은 책을 쓸 시간도 없지만 그런 역량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전문작가나 측근이 대신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워낙 관행이 되다보니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고 범법 행위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모임에서 술마시기 분주한 단체장들이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출간하고 출판기념회를 하고 있으니 개탄스러운 일이다.

둘째, 글의 진정성이 없고 온통 자화자찬과 미화 일색이라서 한마디로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현역 단체장들이 출판기념회에서 내놓은 책을 보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도 놀랄 지경이고 대통령도 하기 어려운 일을 자신만의 치적이랍시고 찬양하고 있다. 거짓과 과대포장이 지나치다.

셋째, 막대한 비용을 들여 찍어내는데 그 돈의 출처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현역 단체장인 경우 더더욱 그렇다. 책 출판비용은 누가 지불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넷째, 엄청난 부수를 찍어 무작위로 살포하는 행위가 선거 때마다 반복된다는 점이다. 선거용 책자는 단 한부라도 공짜로 배포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직인 경우 무작위 배포행위가 더 심할 뿐 아니라 내놓고 선거운동을 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현실이다.

요즘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를 관한경이 본다면 뭐라고 한탄할지 궁금하다.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 글도 아닌 것을 글이라고 내놓고, 책도 아닌 것을 책이라 내놓으니 참다운 글도, 옳은 글쓰기도 없다고 개탄할 것 같다.

글도 아닌 글, 책도 아닌 책이 난무하는 세상에 살면서 글쓰기랍시고 글을 내놓는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관한경이 말하길 너는 글 같은 글을 쓰고 있느냐? 책 같은 책을 내고 있느냐? 글 도둑이나 아닌지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