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사람들 > 정몽주와 정도전

정몽주와 정도전

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장,

(사)삼동인터내셔널이사장
김영주

‘태종 이방원’이 인기이다. KBS1에서 방영되고 있는 사극으로 요즘 필자가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고려라는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던 여말선초(麗末鮮初) 시기, 누구보다 조선의 건국에 앞장섰던 리더 이방원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는 내용의 드라마이다.

정몽주와 정도전. 두 사람은 베스트 프렌드로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후 서로 힘을 합쳐 나라 살리기에 앞장섰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절친으로 지낸 것은 결코 아니다. 정몽주는 고려 왕조를 지키기 위해, 정도전은 이와 반대로 새 왕조 개창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니 둘은 적이 되어 서로 칼날을 겨누게 된다.

한때는 뜻이 맞아 개혁의 동지로 서로를 이끌어 주었지만, ‘조선 개국’이라는 선택의 갈림길에서는 결국 적이 되어야 했던 두 사람의 인생행로가 잘 그려져 필자의 두뇌에 화두를 심어 놓기에 충분했다.

포은 정몽주는 1337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이 몽란(夢蘭)으로 어머니가 난초 화분을 안고 있다가 떨어뜨리는 태몽을 꾸었기에 ‘꿈 몽(夢)’에 ‘난초 란(蘭)’을 써서 몽란이라 했다. 공부를 매우 잘해서 집안의 기대주였는데, 20대 전반에 과거에 세 번 연속 장원을 차지한 후 나라에서 운영하는 학교 성균관에 입학하여 성리학의 대가 목은 이색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삼봉 정도전은 1342년 경상북도 영주에서 출생했다. 정몽주에 비해 나이가 다섯 살 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친구 사이가 된 것은 성균관에서 맺은 인연 때문이다. 정몽주보다 2년 늦게 과거에 합격한 정도전이 성균관에 입학하여 이색의 제자가 되면서 둘은 서로 뜻이 잘 맞아 친구처럼 지냈다.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정몽주 · 정도전 등의 개혁파는 먼저 권문세족이 가지고 있던 대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골고루 나눠 주는 토지 개혁을 단행했다. 귀족들은 크게 반대했지만, 정몽주와 정도전은 함께 힘을 합쳐 토지 개혁을 성공리에 완수했다. 하지만 이 무렵부터 정도전과 정몽주는 개혁의 방법과 속도를 놓고 다투기 시작한다. 정도전의 생각은 고려 왕조는 썩을 대로 썩어서 아무리 개혁을 단행해도 결코 백성을 위한 건강한 나라가 될 수 없다. 썩은 이는 뿌리째 뽑아야 치료가 되듯이 오직 새 나라 개창만이 백성을 진짜로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했으며, 반면에 정몽주는 고려 왕조 내에서 점진적 개혁만으로도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정도전이 주도한 새 왕조 개창 세력은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 공작으로 우왕을 몰아내고 창왕을 세웠으며, 창왕 또한 퇴장시키고 허수아비 임금으로 공양왕을 다시 세웠다. 이러한 것들의 속내는 고려 왕실을 무력화시켜 이성계 주도의 새로운 나라를 개창하려는 것이었다. 정도전 세력의 이러한 움직임에 정몽주도 처음에는 동조했다. 하지만 스승인 이색을 몰아내는 일까지 벌이자, 결국은 참지 못하고 정도전 세력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몽주에게는 힘이 없었다.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군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결과 결국 정몽주는 자기의 제자인 26세의 이방원에게 56세의 나이에 선죽교에서 살해당하게 된다.

개혁(改革)은 제도나 기구 등을 새롭게 만들거나 재(再)제작하는 상황에 사용되는 단어다. 긍정적인 어휘로 받아들여지지만, ‘좋게 바꾼다.’라는 뜻의 ‘개선(改善)’과 달리 그저 새롭게 바꾼다는 뜻만 있다.

역사를 봐도 개혁의 성공 사례는 진짜 손가락에 꼽는다. 오죽하면 개혁이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말까지 있겠는가? 어떠한 권력자라도 권력은 곧 기득권 세력의 지지에서 나오며, 정치 개혁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 권력을 떠받치는 기득권 세력과의 마찰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득권(旣得權)은 ‘이미 얻은 권리’라는 뜻으로, 사회에서, 특정 집단이 타 집단과 비교했을 때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인식되는 권리를 말한다. 돈의 개념으로 따지면 부자들이 가진 부를 기득권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명예나 권력을 기준으로 따진다면 물론 더 다양해진다.
현대에 있어서 어느 국가든 간에 일반적으로 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법조인들과 국회의원, CEO, 고위공무원, 금융권(자본가) 등의 정·재계 인사들이 전통적인 기득권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외에도 의사, 약사 등의 의료인, 대기업의 노조 간부 등이 기득권층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렇다고 모든 기득권을 무작정 끌어내리는 것은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어찌 보면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판검사 해라!’라는 말을 지겹게 해온 우리 사회의 요구를 성실히 수행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당장 의사들의 경우에는 만 3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전문의를 따고 개업을 한다. 그때까지 공부만 한다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엘리트 직종을 똑똑하고 판단력 있는 사람들이 맡아주길 원하기도 한다. 즉, 기득권층이라고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지를 경계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개혁은 썩은 이를 처리하는 것이다. 썩은 이는 정도전의 말처럼 뿌리째 뽑아야 치료가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러기가 힘들게 되었다.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독재자가 나와 모조리 바꾸지 않는 이상 어렵다. 그렇다면 기득권층을 이해시키면서 서서히 변화하는 정몽주의 방법이 더 좋기도 하다. 그렇게 하려면 개혁의 주체자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백성 즉 국민이다. 국민의 지지 없는 개혁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김대중 정부 때 역사상 처음으로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특별검사제도’가 처음 도입되었는데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당시 김태정 법무부 장관이 취임 15일 만에 사퇴하면서 김대중 정부에 부메랑으로 돌아와 검찰개혁의 동력이 상실하면서 검찰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체가 청렴해야 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