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자선원장 · 전북노숙인복지시설협회장

성산 김 영 주(도영)

어느 날 발이 나에게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루 종일 76Kg의 몸을 떠받치고 다녔는데도 얼굴은 씻고 깨끗한 수건으로 닦고, 닦고 난 후 스킨에다 로션까지 발라주면서 발은 대충 씻고 얼굴 닦은 수건으로 문지르고 만다는 불평의 소리였다. 순간 알 수 없는 자책감이 싸늘하게 가슴을 스쳤다. 사실 얼굴이 하루 종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가를 생각할 때 얼굴은 발에 비해 훨씬 모자라는 임무수행을 했는데도 얼굴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나의 편견임을 크게 깨달았다. 그런다고 볼 때 나의 몸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다.

물론 그 후론 발도 얼굴과 똑 같이 깨끗한 수건으로 닦고 로션도 바르고 있다. 이제 나이가 60을 넘어서니 건강에 대해 많은 관심이 가져진다. 아침 산책을 하면서도 건강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말이 확신되고, 건강해야 인류사회를 위하여 보은의 도리를 할 수 있다는 사고가 무너지지 않는 기둥처럼 박혀 져 간다.

요즘 세태를 보면 자신의 몸을 너무 함부로 하는 것 같다. 삶이 어렵다고 자살하는가 하면 조금 더 예쁘게 보이려는 마음으로 몸을 뜯어고친다. 마치 내 것 인양 말이다. 언젠가 뉴스에 성형을 잘못하여 부작용이 나서 여러 사람 앞에 나설 수가 없어 고민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일까지 생겼다. 얼마 전에도 삶의 비관으로 자신의 아이까지 데리고 아파트 8층에서 떨어진 젊은 여인도 있었다.

깊이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지고 사용하고 있는 몸은 내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빌려 쓰다가 죽으면 다시 자연으로 돌려주어야 할 몸이다. 그러니 이 몸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이 몸을 내 것처럼 이용해서도 안 되는 것이며, 이 몸을 팔아서도 안 되고, 버려서도 안 되는 것이다. 언젠가 아내가 조카 결혼식에 한복을 빌려서 입고 다시 깨끗이 세탁하여 갖다 주는 것을 보았다. 이 몸도 그렇다. 태어날 때 빌려서 온 것이므로 살아생전에 잘 관리하여 잘 사용하고 다시 자연에 흠 없이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니 자신의 몸을 아끼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래서 지나친 부담과 스트레스를 주었다면 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 과식을 해서 소화기에 부담을 주었다면 위장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화를 많이 내서 간에 부담을 주었다면 간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 인생살이에서 스트레스를 피할 수는 없다. 스트레스는 일상생활의 일부분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의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면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란, 인간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자연의 균형이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감정적인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의미한다. 우리는 결혼을 앞두고, 시험을 앞두고, 혹은 배우자를 잃고 스트레스에 빠지곤 한다. 잡음, 고온, 저온, 다습 등 인간의 감각을 통한 스트레스가 있는가 하면, 결혼문제, 자녀문제, 직장문제 등 세상만사 속에 스트레스가 도사리고 있다. 불면증, 통증, 과음, 흡연, 소화불량 등 몸으로부터 직접 오는 스트레스가 있고, 말다툼, 채권, 채무 등과 같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거래 속에서도 스트레스는 생긴다. 교통지옥, 슈퍼마켓, 비행기를 놓치고, 물건이나 돈을 잃었을 때 등 스트레스는 어느 곳에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이 몸이 아프면 마음도 좋지 않다. 또 마음이 아프면 몸은 더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도 건강한 몸을 갖기 위해서이다.

마음 한번 잘못 먹으면 몸이 순식간에 나빠진다. 좋은 상태로 있다가도 강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외부의 공격을 받거나 하면 몸의 균형이 깨지는 걸 느낀다. 여기저기 이상이 드러난다. 그렇게 한 번 깨지면 회복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병이 났을 때 ‘왜 아플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마음 한번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몸이 왔다 갔다 한다. 결국 병을 풀려면 마음을 먼저 푸는 게 순서이다.

신라 승 원효는 660년 당나라 유학길에 날이 어두워 어느 동굴 속에서 잠을 자게 된다. 자는 도중 갈증을 일으켜 더듬더듬 어느 고여 있는 물을 마셔 갈증을 풀게 되었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물은 해골 속의 물임을 알아 구토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원효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진리를 얻게 된다. 일체유심조란 모든 것이 마음의 조화라는 뜻이다.

마음을 제대로 풀어내면 몸의 병은 50∼80% 정도는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몸의 병을 고쳤다 하더라도 마음을 제대로 풀지 못하면 곧 재발하거나 상처가 커지는 경우가 있다. 마음에 맺혀있는 그 부분을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그 증상이 다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혜 있는 사람들은 ‘마음을 고쳐먹으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 나의 병을 고쳐주는 것도 잠깐이다. 병이 생긴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 다시 발병할 수 있다. 이쪽에 생겼다가 나았는데 다른 쪽에 다시 생긴다. 위에 생겼다가 간에 생겼다가 돌아가면서 취약한 부분에 나타난다.

그래서 원인을 제거하려면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당장 내가 살기 위해서이다. 그 사람이 보기 싫더라도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면 손해 보는 건 바로 나니까 내 건강을 지키려면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꾸는 게 죽기보다 어려울 때가 있다. 그때는 어쩔 수 없다. 잊어버리거나, 포기하거나, 보류하거나…, 그러면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