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민 유 성 무

사람은 참 묘한 인식구조를 가진 것 같다. 세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없는 호랑이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믿게 된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란 말이 있다. 천하의 효자로서 군자의 표상인 증자가 살인을 했다는 거짓말을 세 번 듣자, 증자의 어머니가 베틀을 던지고 도망갔다는 증삼살인(曾參殺人)이라는 고사도 있다. 즉 터무니없는 말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결국 믿게 되니, 사람이 그다지 이성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사람의 한계를 가장 파괴적으로 악용한 사람 중 하나가 나치의 선전상 파올 요제프 괴벨스였다. 선전과 선동의 귀재였던 그는 거짓이 처음에는 부정되고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되면 결국 모두가 믿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집단으로서의 대중은 생각이 없는 존재였기에, 대중의 생각이란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대중의 생각은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을 통해 분노와 증오를 만들어서 조작이 가능하며, 승자의 말은 진실 여부를 추궁당하지 않는 것이었다. 괴벨스는 여론과 상징 조작을 통해 독일을 전쟁의 광기로 몰아넣었다.

왜 인간 특히 대중은 거듭되는 거짓에 속수무책인 것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 첫째, 반복적으로 정보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둘째,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셋째, 입력된 정보를 자기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구체화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보원이 일정한 권위를 갖고 있으면 인식의 왜곡이 강하게 발생한다고 보인다. 진실은 얼마든지 조작된 인식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

일찍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의 건국이념 기초를 마련한 토마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오로지 사실과 양심에 기초하여 다양한 견해를 피력하여 결과적으로 공정한 여론을 조성하도록 함으로써 국가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언론의 존재가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이라고 믿었다. 물론 그도 대통령 취임 후에는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 짜증을 냈다고 하지만, 정권에 의해 국민의 인식이 조작되면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졌음은 틀림없는 것 같다.

민주국가에서 언론의 임무는 막중하다. 세상은 급변하면서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개인은 어떤 현상의 이면에 담긴 진실을 파악하기 힘들다. 특히 일상에 찌들어 사는 개인들이 많을수록 대중은 괴벨스의 말처럼 생각이 없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과 대중을 대신해서 사회를 진단하고 비리와 모순을 고발하며 정권과 지도층을 예외 없이 견제하는 대리인이 필요하다. 물론 시민사회단체도 있지만 대량의 정보 유포가 가능한 언론이 주된 대리인일 수밖에 없다. 이런 언론이 사실을 왜곡하거나 편파보도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중대한 범죄행위다.

국민은 헌법으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으로, 언론기관이 양심에 기초하여 공익을 위한 보도를 할 경우 면책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까지 부여했다. 그만큼 언론의 공익성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인간의 보편적 양심에 반하는 주장으로 여론을 호도하거나 초점을 흐리게 하면서 진실에 침묵함으로써 불의에 동조하는 것 또한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범죄라고 아니할 수 없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권리에는 의무라는 그림자가 함께 해야 한다. 언론이라고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으며, 언론의 영향력이라는 측면을 고려할 때 범국민적 차원에서 상시적으로 검증받아야 할 대상임에 틀림없다.

짧은 민주주의 역사 중 상당기간을 독재의 압박 속에서 몸부림쳤던 대한민국에서 언론은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거쳤다. 일부 언론은 독재 정권에 항거하면서 불의에 대항함으로써 이 땅의 민주주의 발전에 공헌했다. 하지만 일부는 독재 정권과 금권, 기득권의 나팔수로 전락하여 불의에 동조했던 씻기 힘든 과오도 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단죄를 받지 않음에 대해 감읍하고 언론의 사명을 다함으로써 그 엄청난 죄를 갚아나가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지금은 국가비상상황이라고 한다. 북핵으로 인한 안보 및 외교 위기, 서민경제 파탄, 부실 대기업 몰락, 구조조정, 사회갈등 증폭, 경주 지진과 핵발전소 안전, 여야 대립 등··· 뭐 하나 쉽지 않은 형편에 정권 핵심부와 법조계에서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의혹과 범죄들을 보면, 지금은 비상상황을 넘어서 국난 상황이다. 지금이야말로 언론이 양심에 따라 공정하고 성역 없는 보도를 통해서 정의로운 여론을 형성하고 주권자들이 행동하게 함으로써, 국민이 주체가 되는 대한민국 재건에 앞장서라는 것이 국민의 명령이다. 이를 어기는 언론이 있다면, 마땅히 국난을 초래한 세력과 함께 추상같은 심판대 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국난 극복, 올바른 언론들이 국민과 함께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