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민 유 성 무

중국의 전국시대를 풍미한 한비자(韓非子)는 그의 저서 <한비자> 망징(芒徵) 편에서 나라가 망하는 징조를 47가지로 설명했다. 한비자는 망국의 원인을 왕과 권력층, 기득권층의 행태에서 찾았다. 망국의 원인이 본질적으로 나라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고 봤다. 그가 지적한 망조(亡兆) 중 대표적인 13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권력층들의 모략질로 나라가 황폐해지면서 외국에 의지한다. 둘째, 임금이 미신에 빠진다. 셋째, 정경유착으로 축재를 한다. 넷째, 임금이 중론을 무시하고 측근의 편향된 정보만 믿는다. 다섯째, 임금이 사사로운 이익을 탐한다. 여섯째, 임금이 화합하지 않고 바른말을 듣지 않으면서 제멋대로 이기려고만 한다. 일곱째, 국가적 상황을 무시하고 교만하게 외교를 한다. 여덟째, 많은 사람들에게 원한과 수치를 주는 자들을 가까이한다. 아홉째, 임금이 사사로이 법을 이용하면서 영(令)을 마음대로 바꿔서 나라를 혼란하게 한다. 열째, 임금이 측근들의 권력 다툼과 백성에 대한 수탈을 방치한다. 열한 번째, 권력실세가 무리를 지어 임금의 판단을 좌우하면서 국정을 농단한다. 열두 번째, 정실 인사를 거리낌 없이 한다. 열세 번째, 임금이 조리가 없고 실무능력도 없는 가운데 법을 따르지 않는다.

한비자는 47가지 망징에 이어서 경고를 했다. 망조가 든다고 반드시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가서 결국 외침에 무방비가 된다고. 그래서 그는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법을 강조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 평민이라도 공이 있으면 상을 받음에 빠짐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秦)의 천하통일 기틀을 제공한 그의 경륜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망징의 사례를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일제강점기의 치욕을 초래한 무능하고 부패했던 조선의 말기가 꼭 그랬다. 일제를 몰아낸 후 이어진 이승만과 군부 독재정권에서도 망징이 만연했다. 권력이 오로지 국민에게만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위정자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제한된 권한만을 가질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것처럼 온갖 부정부패와 폭거로 나라를 망쳐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은 온전히 국민들의 헌신과 희생 때문이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겠다고 악랄한 독재와 자본의 수탈을 참아가면서 소처럼 일했던 국민들의 땀과 눈물로 이 나라가 성장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숭고한 피로 군부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정경유착으로 생긴 외환위기를 구조조정으로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장롱 속 금붙이까지 들고 나왔던 국민들의 희생으로 극복했다. 이렇게 지켜낸 대한민국을 그 누가 어지럽힐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대한민국을 어지럽히는 자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해야 한다.

최근 안보위기 논쟁에 이어서 종북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기회에 국민적 차원에서 안보와 종북에 대한 정의를 내림으로써 더 이상 소모적인 정쟁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안보능력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결코 무기의 우월적인 파괴력이나 외국의 지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유사시 내 한 몸 던지더라도 국가와 국민이 내 가족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비자가 질타한 47가지 망령된 행동으로 나라를 속으로부터 갉아먹고 국민들의 틈을 벌리는 자들이야말로 총칼로 대치하는 적보다 훨씬 안보에 위협적이다. 이런 자들이 국민의 애국심을 앗아가니 이보다 더한 안보적 위협세력은 없다.

도대체 종북이 무엇인가? 북한과 일부라도 의견이 비슷하면 북한을 추종한다고 낙인찍는 것이 말이 되는가? 진짜 종북은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칙을 무시함으로써 민주국가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자들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휘두르면서 국정을 농단하는 자들이며, 불편부당해야 할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이다. 방위산업 비리를 저지르는 자들이고, 혈세를 낭비하는 자들이다. 시도 때도 없는 안보위기 조성으로 국민들의 안보불감증을 불러일으키는 자들이다. 약자들을 쥐어짜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를 일삼으면서 경제를 망쳐놓는 자들이다. 나라를 망조 들게 하는 자들의 악행을 의도적으로 덮으려는 자들이나 침묵으로 동조하는 자들이다. 이렇게 국기를 문란케 하여 북한의 군사적 야욕을 높여주고 민주평화통일을 저해하는 것, 이것이 국민의 이름으로 척결해야 할 종북의 실체다.

2300년 전 한비자는 자신의 조국인 한(韓)나라의 망징을 지적하면서 법치를 촉구했다. 그의 47가지 지적 하나하나가 모두 조국의 부국강병을 위한 충정이었다. 그러나 무능한 왕과 부패한 관료들은 그의 탁견을 무시했고, 결국 그가 주장한 법치로 강성해진 진(秦)에 의해 한나라는 멸망당했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실상을 한비자의 눈으로 점검하고, 내부의 암 덩어리인 종북세력을 때려잡음으로써 국가의 안보를 굳건하게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