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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체

윤복순 윤약국약사

K가 1시까지 약국 앞으로 오겠다고 전화를 했다. 나는 일요일 모임이 있는 줄은 알지만 몇 시에 어디에서 하는 줄은 몰라도 된다. 기사가 알아서 잘 데리고 가기 때문이다. 기사는 자동차를 직업적으로 운전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그녀를 기사라고 부른다.

그녀는 나보다 스무 살 정도 젊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박사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아는 것도 많다. 현실로 보면 내가 그녀의 조수쯤 된다고 해야 맞다. 그런데 그녀는 자청해서 나의 기사라고 밝힌다.

도 협회에서 연락을 할 때도 명색이 회장인 나에게는 아무 소식이 없고 그녀에게 이런저런 세세한 얘기를 다한다. 그녀가 데리고 가지 않으면 내가 못 갈 것을 알기에 그러는 것 같다.

나는 차가 없다. 그다지 필요치도 않다. 집에서 직장까지는 걸어서 5분도 안 걸린다. 한 번 약국에 들어가면 집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 약속이나 있지 특별히 나돌아 다닐 일이 없다. 오랫동안 운전을 안 했더니 운전 감각도 다 잊어버렸다.

그녀는 운전만 해 주는 게 아니다. 내가 컴퓨터를 잘 못 하니까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때로는 직접 해 주기도 한다. 모임의 장소부터 현수막 만드는 일까지 시시한 것도 다 처리한다.

그녀는 환경학을 공부하다 조경학으로 바꿨다. 석사학위가 두 개고 박사학위 하나다. 익산시내 공부는 너 혼자 다 하냐고 내가 놀렸다. 그런데 그 덕을 지금 많이 본다.

수목원에서 사위질빵과 할미밀빵에 대해 알려줬다. 물론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다. 사위질빵은 꽃잎이 네 장이고 꽃이 작다. 할미밀빵은 꽃잎이 다섯 장이고 꽃이 크고 꽃대 하나에 세 송이씩 핀다. 이들은 줄기식물로서 산에서 들에서 물건을 묶어 미고 지고 다닐 수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렇듯 야생초면 야생초, 나무면 나무, 꽃이면 꽃 그 이름은 물론이고 그 이름이 어떻게 나왔는지 설명을 해 준다. 전통정원이 그녀의 전공이다. 어디를 가든 흥미진진하고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비교해 주니 인기가 좋다.

뿐만 아니라 젊으니 행동이 빠르고, 모르는 것도 스마트폰으로 금방금방 찾아내고, 일이 있으면 척척 알아서 한다. 예의까지 바르다. 야무지고 똑똑하고 모르는 것이 없는, 이런 기사를 어디서 구했냐고 모두들 부러워한다. “내 기사 아무나 못해, 최소 야 정도는 되어야지.” 하며 목을 뻣뻣이 세우고 거들 먹을 떤다.

S도 나의 기사다. 동료 약사들은 그녀와 나를 바늘과 실이라고 한다. 나는 알바늘이라서 꼭 그녀가 있어야 한다고도 한다. 내가 하는 짓이 어설프고 왠지 물가의 어린애 같아 혼자서는 집도 못 찾아갈 것 같은 가 보다. 나는 덜렁대거나 어수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남들 눈엔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녀는 나보다 열 살쯤 어리다. 글도 잘 쓰고 사진도 잘 찍고 남들은 생각도 못할 반짝반짝하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한다. 요리도 잘하고 실력도 대단한 약사다. 도대체 너는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말을 듣는다.

그런 그녀가 나의 기사다. 운전만 잘 하는 게 아니라 같이 가는 동안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나 내가 모르는 젊은 세대들의 얘기, 약사회와 약국의 근황 등 유익한 정보까지, 횡재한 기분이 들게 한다. 어찌 그녀의 차를 타지 않으랴.

그녀의 차를 타고 그녀와 얘기 나누는 것이 좋아 음표도 볼 줄 모르면서 합창 연습을 하러 가고 판소리를 배우러 다녔다. 뿐만 아니라 나는 가지 않아도 될 자리를 주책없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아니 지금도 다닌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어 보기 좋은 것은 사진으로 빼 준다. 그러면 나는 또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을 한다.

“누가 이렇게 사진을 잘 찍어 줘?”

“응, 나는 외출을 할라치면 기사와 카메라맨이 따라붙어.” 목에 힘을 있는 대로 다 주며 잘난 척을 한다. 부러운 눈으로 쳐다볼 때

“자기들은 혼자 가? 그건 외출이 아니라 시장가는 거지.” 이렇게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동네 친구들은 그놈의 잘난 체 좀 그만하라고 아우성이다.

기사 하면 아인슈타인의 기사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인슈타인이 강의를 할 때면 뒷자리에 앉아 들었는데 매번 같은 얘기를 해서 기사도 다 외울 정도였다. 어느 날 기사가 강의 내용을 다 아니 자기가 하면 어떻겠냐고 해 아인슈타인이 하라고 했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이 나오자 그 정도의 내용은 내 기사도 아는 거니까 기사한테 답변은 들으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나는 잘하는 것이라고는 밥 잘 먹는 것 밖에 없다. “그러니까 너는 못 하는 것이 뭐냐? 모르는 게 뭐냐?” 는 말을 듣는 내 기사들한테 귀동냥만 했어도, 아인슈타인의 기사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몇 년을 차를 얻어 타고 다니는데도 잘 하는 것이라고는 지금도 밥 잘 먹는 것 밖에 없다. 서당 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차를 타고 오가는 동안이 모임보다 훨씬 더 재미가 있다. 기사의 능력 덕분이다. “모르는 것이 뭐냐?, 못하는 것이 뭐냐? 는 소리를 들으면 뭐하니?, 그녀들이 내 기사인데.” 나는 또 이렇게 거드름을 피운다. 그녀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이 말을 사람들이 많은 데서 스스럼없이 한다. 그녀들이 화를 내기는커녕 큰 소리로 웃는다. 다른 사람들까지 다 웃는다. 물론 내가 그녀들의 적수가 되지 못하기 때문임을 안다.

하수의 반란, 잘난 체도 이 정도면 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