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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개헌 논란을 지켜보며

협동사회경제연구소 대표

권 태 홍

부끄럽고 엽기적인 일이 벌어졌다. 하루하루 그 실상이 상상을 넘어서고 있다. 그 덕에 25일 써두었던 이 글을 마감일 앞두고 27일까지 계속 수정하고 있다. 대통령을 잘못 선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어느 날 문화 융복합 운운하는 얘기하나에 재벌들이 지갑을 열었고 짧은 시간에 수백억 원에 이르는 돈이 강제 모금되었다. 청와대 개입을 대통령이 인정했다. 삼성과 이화여대도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문체부 공무원이 ‘나쁜 사람’이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경질되었다. 그 뒤 최순실의 컴퓨터에서 현직 대통령의 연설문이 쏟아져 나왔다. 공무와 아무 관련 없는 일반인에게 불법적으로 그것도 사전에 유출된 것이다. 대통령은 공사 구분 못하는 언어로 사과했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쟁취에 의해 행정부의 수반이 30년째 민주적으로 선출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2016년에 목도하고 있는 일이라고 믿기에 어렵다.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선출되고 취임식 선서에서 헌법준수를 국민들에게 약속한다. 헌법 69조에서는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순수한 마음으로’ 헌법을 위반했다. 한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은 SNS에 이렇게 썼다. JTBC가 확인 보도한 대로 최순실이 박 대통령 메시지를 포함해 청와대 공적 문서를 PC로 받았거나 열람했다면 국가안보가 뿌리째 흔들린 것이다. 북한뿐 아니라 주변국들이 모두 들여다볼 수 있다는 논거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경호실의 묵인이나 배임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내용이다. 경호실은 대통령의 신체적 안위뿐 아니라 청와대 통신보안을 유지, 방어하는 임무가 있다. 당장 특검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연설을 통한 일명 최순실 개헌 제안은 하루 만에 파탄이 났다. 제안 직후에 여론조사에서는 이미 과반 이상의 국민이 대통령의 개헌 제기를 정략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나타났었다. 국민을 너무 쉽게 보았다.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할 책임을 지고 있다. 최순실 사태는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 국기문란행위이다. 애당초 개헌을 제기할 자격이 없었다. 헌법을 충실히 준수한다는 전제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헌법이 국민적 합의와 통합을 높여가는 약속이 되려면 헌법 준수에 대한 깊은 고민과 치열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헌법은 정략을 넘어 국가백년지대계의 주춧돌이 되어줘야 한다. 정파적 이해관계나 근시안적 이해관계에 매여 헌법이 개정된다면, 두고두고 국민들의 삶에 역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만큼 개헌은 매우 심도 있는 종합적 검토와 국가 미래비전에 대한 국민적 합의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절박한 필요성, 신뢰와 소통, 인내 있는 토론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최순실 개헌 제안처럼 헌법에 대한 근시안적이고 정략적인 접근은 헌법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헌법 준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개헌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헌 문제는 끊임없는 이슈가 되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것이다. 1987년 국민들은 6월 항쟁을 통해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다. 이후 소위 87년 체제라는 이름으로 30년이 흘렀고 상황과 요구도 많이 바뀌었다. 주로 권력제도를 중심으로 정치권에서 문제제기가 되고 있지만, 헌법의 전반적 내용과 함께 관련된 제도와 문화들에 대해 종합적인 검토와 토론을 통해 개헌을 준비해야 한다.

해방 이후 제헌헌법은 국민적 토론과 합의과정 없이 주어진 헌법이었고, 그 이후 개헌은 4월 혁명이나 6월 항쟁과 같은 전 국민적 항쟁 또는 쿠데타나 10월 유신과 같은 상층 권력의 폭거 등 두 가지 계기로 이루어져 왔다. 이제는 개헌의 방식과 과정부터 달라져야 한다. 우선 헌법의 기본 내용에 대해 국민들이 잘 알 수 있어야 한다. 주어진 헌법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이해하고, 생활의 근거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가고 지켜가는 헌법이 되어야 한다.

익산시민들부터 헌법을 꼭 한번 읽어보시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헌법은 전문, 총강,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정부(대통령, 행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 지방자치, 경제, 헌법 개정의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헌법이 국민생활에 가까워질수록 법치와 민주주의는 그만큼 발전한다고 믿는다. 개헌은 권력구조만이 아니라 국민 기본권에 대한 폭넓은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행복추구권, 정치적 평등권, 사생활의 비밀보장, 통신 비밀보장,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등 국민 기본권의 헌법 조항과 관련된 법제도와 문화 등에 대한 평가, 성찰과 토론, 합의과정이 필요하다.

또 권력구조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제,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개헌의 내용일 수 있는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 문제인가? 말도 안 되는 단순화이고, 일면적 접근이요, 정략과 욕심에 대한 은폐이다. 선거제도와 정당제도에 대한 종합적 접근 없이는 현재의 엘리트 기득권 정치의 폐단을 더 공고히 하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

정치권이 개헌의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국민의 이익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일이다. 이번 최순실 개헌안의 제기에서 소수 엘리트 기득권 정치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났지만, 국민이 준비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또 다른 30년은 훨씬 더 소수만을 위한 제왕적 권력구조로 고통받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헌법을 가까이 두고 읽고 30년 이후를 생각하고 얘기 나누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