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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끈다

익산시민 유 성 무

19세기 말엽에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는 유럽 국가들의 소득분포를 연구했다. 파레토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전체 소득의 80%를 상위 20%가 차지하는 현상이 대체적이었다. 이후 그의 연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세계는 물론이고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균등 현상을 설명하는 ‘80/20 법칙’으로 자리 잡았다.

꿀벌과 개미의 사회에서는 전체 개체의 20%가 일을 해서 전체를 먹여 살린다고 한다. 완두콩 수확량의 80%는 전체 줄기 수의 20%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인간세계에서도 80/20의 불균등 현상은 많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전체 조직원의 20%가 성과의 80%를 만들어낸다. 전체 고객의 20%에서 수익의 80%가 창출된다. 컴퓨터의 프로그램 중 20%가 전체 컴퓨터 사용시간의 80%를 차지한다. 범죄자의 20%가 전체 범죄의 80%를 저지른다. 이외에도 80/20 법칙으로 경험적 설명이 가능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80/20의 불균등 현상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하도 80/20 법칙으로 파악 가능한 현상이 많아서 시스템에서는 안정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작용한다고 말해지기도 한다. 즉 조직화된 시스템에서는 전체의 효율 극대화를 위해서 상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80/20 논리는 중요한 소수에 집중함으로써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 전개됐다. 실제로 여러 분야에서 80/20 법칙은 효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회의 불균등을 설명하고 사회 전체의 효율을 높임에 있어서 80/20 법칙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고 본다. 경쟁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모두의 사회적 능력이 같을 수 없다. 능력이 우월한 20%의 소수가 사회 전체의 상당부분을 생산하고 차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들이 능력을 신장함으로써 자신들과 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사회의 성장에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80%의 다수는 사회적 잉여인가? 아니다. 80%가 뒷받침하기 때문에 20%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80%는 비록 두드러지지 않지만 각계각층에서 20%가 다 할 수 없는 사회적 역할을 담당한다. 그럼으로써 20%가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한다. 80%는 결코 잉여가 아닌 것이다.

80%의 중요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세상은 넓고 빠르게 변한다. 80%는 곳곳에서 새로운 변화의 주역이 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20%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의 자리를 메우고 또 다른 성장을 이끈다. 80%는 20%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들이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사회가 발전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건이다.

인터넷이 생활 속에 자리 잡으면서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이 ‘롱테일(long tail) 법칙’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사이버 공간에서는 적절한 거래 플랫폼을 제공하면 80/20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상위 20%의 아이템이 전체 매출의 80%를 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아이템들로도 상당한 수준의 매출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의 신뢰와 거래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면, 시장의 합리적 선택을 통해 기존의 80%가 더 큰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음이 증명됐다.

롱테일 법칙은 80/20 법칙과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다만 소외받았던 80%에게 어떻게 기회를 주느냐에 따라서 전체의 효용이 커질 수 있음을 실증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보인다. 상위 20%가 성장을 주도하면서 나머지 80%가 역동적으로 변화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디자인해야 침체일로의 우리 경제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 정의가 요구된다. 20%가 정경유착 등 탈법과 편법과 단절해야 한다. 오로지 능력과 정당한 협력을 통해 더 큰 무대의 시장을 개척하면서 성장을 견인해야 한다. 이들이 더 많은 소득과 부를 창출하되, 투자와 납세, 사회공헌활동 등을 통해 부가 빠른 속도로 사회 전반에 순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의 성공은 80%의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한 것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분야는 널려 있다. 80%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분야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사회 시스템이 왜곡되어 80%의 기회가 박탈되고 있는 것이다. 80%의 역동성이 사라진다면 20%의 성장이 불가능하며, 결국 공멸의 길로 가게 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20%에만 집중했다. 이제는 80%에서도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20%와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경제 정의, 그리고 경제 정의를 가능케 하는 정치 풍토 혁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새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