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사람들 > 중간 가기가 힘든 세상

중간 가기가 힘든 세상

익산문화원 고문

김 복 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을 기억해보자. 두드러지면 미움을 받는다는 의미이며 ‘잘난 척’하다 가는 살아남기가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언제나 앞장서지 않고 중간 정도에 묻어가는 것이 맘 편히 살아가는 지혜라고 여겼기에 중간 서기를 하나의 지혜로 생각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중간쯤 서 있으면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생긴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도 중간층이 되면 큰 걱정은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나는 중산층에 해당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 자신 있게 나는 중산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경제적 능력이 있다고 중산층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까?

선진국 중산층과 우리나라의 중산층 기준을 보면 중산층은 상류층과 하층의 중간을 의미하며 중산층은 OECD기준에서 소득 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 집단이고 생활수준도 중간계층에 해당되는 계층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득에 기준을 두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프랑스나 영국 같은 문화 선진국은 중산층의 기준이 좀 다르다.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하고,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며,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특히 남과 다른 맛을 내는 요리 솜씨가 있고, 공익에 참여하고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야 중산층이 될 수 있다고 프랑스의 ‘풍피드’ 대통령은 지적했다. 영국의 중산층도 프랑스와 비슷하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페어플레이를 하고 자기주장과 신념을 갖고 있어야 하며, 강자에 대응해 약자를 두둔할 줄 알아야 하고, 불의에 의연히 대처할 줄 아는 계층을 중산층이라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중산층은 완전히 경제적 기준에 의해 정해지고 있다. 융자 없는 아파트와 중형차에, 월급 500만원, 예금 잔고 1억 원 이상의 재산과 물질적 가치로만 따져 중산층이라 한다. 더욱이 근자에 들어와서는 SNS에 떠도는 우리나라의 수저론으로 중산층이 결정되고 있다고 한다. ‘금수저’는 자산 20억원, 연 수입이 2억원 이상인 가구이어야 하며, 그 상위 개념으로는 ‘아다만티움 수저’ ‘다이아 수저’도 있다고 한다. 하층인 ‘흙 수저’는 자산 5000만원 미만 연수입 2000만원 미만이라고 말하고 있다. ‘동수저’는 자산 5억원 연 수입 5500만원을 넘어야 하며 동 수저 계층이 되어야 그나마 중산층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실정이 한국 사회다. 대학을 졸업해도, 입사원서를 내는 족족 탈락하는 이른바 탈락자들이 속출하는 마당에 동 수저 되기가 그리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한동안 재산기준으로 노비부터 황제까지 분류한 대한민국 계급표라는 것도 있었다. 재산 500만원 미만은 노비, 5000만원에서 10억 정도는 평민, 평생월급을 모아도 넘을 수 없는 상위 1%에 해당하는 30억 이상은 왕족, 1000억 이상이 되면 황제. 지금이 봉건 왕족 시대도 아닐진대 21세기 한국판 수저론이라는 논리가 봉건 질서에 머무르고 있었던 실정이다. 그러하다 보니 천민, 반자본주의, 헬 조선 같은 좋지 않은 언어가 탄생되기도 하였다.

가만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들 했는데 오늘날에는 중간가기도 매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가만있으면 밑바닥으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으로 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현대사회의 자본은 경제 자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로 만들어지는 사회자본 취향이나 소장품 등의 문화자본, 지위나 사회활동에서 비롯되는 상징 자본도 경제 자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친척 중 외국인이 있는가? 20명 이상 모아놓고 파티를 주최한 적이 있는가? 유니세프와 같은 국제난민 구제를 위하여 국제단체에 기부한 적은 있는가? 신문 방송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는가? 외국어를 2개국 이상 구사하고 있는가? 경제 항목보다 사회 문화 항목을 더 중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계층이 결정된다고 했다. 우리도 중산층 기준을 바꿔보아야 한다. 사회문화 관점으로 바꿔보자는 것이다. 재산 기준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감, 소통과 공감능력, 고상한 취미, 삶에 대한 자세 중 행복에 대한 생각 등의 기준으로 책임감을 갖고 사회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과연 우리는 삶을 즐기며 살고 있는가?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인가? 타인과 잘 소통하는가? 기준을 바꿔 세상을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다.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아름답고 즐거운 일들이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선진국을 물질로만 따라잡으려 하지 말고 이제는 가치나 문화를 가꾸는데 힘써야 선진국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선진국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나라도 중산층이 두터운 나라로 변해야 하나 십일년이 넘도록 국민소득이 2만 달러대를 맴돌고 있으니 아마도 선진국에 들어가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과연 익산 시민 중 나는 중산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민은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