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산시민 유성무
서울 올림픽이 막 끝난 1988년 10월,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벌어졌다. 지강헌을 포함한 탈주범들이 9일 동안 도주 중 인질극을 벌이다 자살 및 사살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지강헌은 죽기 전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면서, 없는 자에게 가혹한 법의 불평등을 사회에 고발했다. 2004년 서울고등법원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 고 노회찬은 서울고등법원장에게 물었다. “대한민국 법정에서 만인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십니까?”“평등해야 되는 것이지만 현실로는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2005년 대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노회찬은 후보자에게 다시 물었다. “우리나라에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법은 그렇게 되어 있지요.” “대한민국에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한 것 아닙니까? 2020년, 대한민국 사법부 수장이 법집행의 불평등을 인정한 후로 15년이 흘렀다. 며칠 전 전 대통령 이명박이 2심 재판에서 뇌물 수수 및 횡령 등으로 징역형 17년을 선고받았다. 이명박에 대한 검찰 및 특검 수사가 꼬리곰탕 한 그릇 먹고 범죄를 덮은 봐주기 수사였음이 드러났다. 삼성그룹 부회장 이재용에 대한 파기환송심도 이상하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대법원에서는 이재용에 대한 뇌물죄 등을 인정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한 2심 재판을 파기 환송했다. 파기 환송심에서는 뜬금없는 준법감시위원회란 걸 들고 나오면서 뭔가 면죄부를 주려는 것 같다. 대한민국 법은 노회찬이 지적한 것처럼 돈과 권력을 쥐고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극소수에게 한없이 관대한 것인가? 오히려 법의 이름으로 관용을 베풀어야 할 돈 없고 힘없는 사람에게는 추상같은 위엄을 과시하면서 말이다. 이러니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법의 권위와 정당성에 조소를 보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법(法)이란 글자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당연한 이치이거나 물처럼 공평하게 만민을 규율한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마치 자연의 법칙처럼 불편부당하여 정의로운 것인 냥 해석하곤 한다. 나는 법이란 게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마음 가는대로, 또 시대적 필요에 따라 지나가는(去)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민주사회를 규정하는 원칙 중 하나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에서 만든 법률로써 국가를 운영한다는 법치주의다. 삼권분립의 원칙이 작용한다지만, 법치주의의 근간은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의회 민주주의에 있다. 법은 정치 즉 국민 위에 있는 지고무상의 가치가 아니라, 시대적 필요에 따라 만들어 쓰다 버리는 도구일 뿐이라는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제19조(양심의 자유), 제46조(국회의원의 의무), 제103조(법관의 독립성)에서 양심이란 표현이 딱 세 번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 제19조의 양심은 “‘착한 마음’ 또는 ‘올바른 생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을 추구하는 가치적·도덕적 마음가짐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대법원은 2018년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이다. 여기서 양심이란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이 나오는데, 양심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다. 법관은 법률적 판단을 할 때, 지극히 양심적으로 오로지 법의 정신에 따를 때만이 존재가치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양심의 법률적 개념에 있어, 국민 개개인이나 국회의원, 판사와 검사를 포함한 법관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헌재와 대법원의 양심에 대한 해석에 의하면, 사회정의의 최후 보루라는 법관의 판단 및 행위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칠 정도로 절박함의 표현이라고 판단해야 한다. 권한의 막중함을 놓고 볼 때, 판사와 검사의 판결 및 기소 행위에 대해 양심의 보편적 타당성을 국민적 잣대로 재단해야 하는 이유다. 자고로 법이 실제로 만인에게 평등했던 세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진 자가 국가권력을 농단하고 돈으로 세상을 휘두름을 법이 막지 못할 때 한 번씩 세상이 뒤집어졌다가 다시 어지러워지는 것을 반복했을 뿐이다. 세상의 속성이 이러할진대, 사법정의라는 불가능을 고대함이 어리석은 바람일까? 문제는 정치, 특히나 압도적 의석을 쥐어줘도 뭐하나 시원하게 돌파하지 못하거나 아니하는 여당이다. 그들은 정치가 법을 비롯한 국가시스템의 최상부에 있어야 함을 모르는 것 같다. 그저 방역 성과를 바탕으로 경제를 선방한 문재인 정부에 빌붙어 눈치나 살피면서 정권연장에만 골몰하고 있다. 정치인들이여, 법이 망가지는 것은 당신들의 무능 내지는 탐욕 탓이다. 공수처를 비롯한 법관 인사시스템 개혁을 과감하게 밀어붙여 최소한이나마 법의 공평성을 세워라. 무엇보다 정치하는 당신들의 양심이 무엇인지 먼저 진지하게 단 한 번만이라도 들여다봐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