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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여행기

윤복순 윤약국약사

새벽에 일어나니 안개가 진하다. 바로 앞도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다. 7시가 되어도 8시가 되어도 벗겨질 기미가 없다. 불안하다. 9시 반까지는 벗겨지길 기대하며 열차에 올랐다. 동편 좌석이었는데 계속 해를 볼 수가 없다.

예부터 “안개 낀 날은 대가리가 벗어진다”고 했다. 햇볕이 쨍쨍 난다는 뜻이다. 그 햇볕이 언제부터 날지, 형부가 운전하기 전에 해가 나오기를 기도했다. 기도가 통했는지 광주역에 내렸을 때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하고 따뜻한 날이다.

증도는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언니 형부랑 우리내외가 같이 갔다. 형부는 남도여행길엔 언제나 운전을 자청한다.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다.

언젠가 신문에서 증도를 읽었다.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금연섬이고, 갯벌공원이 있고,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란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해수욕장 뒤의 소나무숲길이었다. 10만 그루의 해송이 있는 숲길.

신선한 바닷바람과 짙은 솔향기,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 소나무밭이 한반도의 지형을 닮았다니 호기심이 당겼다. 마침 언니네도 가보지 않았단다. 바로 의기투합이 되었다.
증도는 말이 섬이지 연육교로 이어져 있다.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더 많이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비수기인데도 사람이 많다.

제일 먼저 나를 반겨준 것은 짱뚱어다리다. 갯벌위에 떠있는 나무다리로 썰물 때는 갯벌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밀물 때는 바닷물 위를 걷는다. 내가 건널 때는 썰물이었는데 짱뚱어, 농게 칠게 등이 갯벌에 쫙 깔려 있다.

이곳에서의 일몰이 장관이라는데 우리는 어두워지기 전에 광주에 도착해야 한다. 형부는 야간에 운전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일몰시간이 가까워지면 사진작가들이 좋은 자리를 잡고 죽 기다리고 있다는데 나도 1박하며 그런 호사를 누려보고 싶다.

그 다리를 건너면 우전해수욕장이다. 우선 크기가 대단하다. 명사십리가 넘는다. 해변에 짚풀 파라솔을 만들어 놓았는데 꽤 이국적이고 낭만적이다. 파라솔을 따라 모래밭을 걸어도 좋을 듯하다.

해변으로 걸어갔다가 솔밭길로 돌아오면 금상첨화겠는데 왕복 10Km가 넘는다. 편도만 걷기로 했다. 남편은 해변을 걷겠단다. 언니와 나는 솔밭을 걷기로 했다. 형부는 차를 가지러 갔다. 솔밭 산책로도 모랫길이다.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다. 슬로시티에서 서두를 게 뭐 있겠는가.
지난 일요일 이종사촌이 우리집에 다녀갔다. 어머니 형제분 중 유일하게 이모 한 분이 살아계신다. 그 이모의 아들이다. 서울에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익산에서 지척인 군산에 살고 있단다. K국립대학의 교수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혈육이 그리워지는 가 보다. 이종사촌이 군산에 내려온 지는 10년이 넘었는데 계속 주말부부를 하다 가족까지 내려온 지는 2년 남짓이란다. 앞으로 자주 만나기로 했으니 언니도 같이 만나자고 했다. 언니와 나는 이모 한 번 찾아뵙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어른들은 자식들이랑 여행하는 것보다 형제지간에 하는 여행이 더 재미있고 얘깃거리도 많다고 한다. 어려서 가난하게 부대끼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언니가 40년 가까이 교직생활을 마치고 이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데 여기저기 파스를 붙여야 한단다. 언니와 나는 나이 먹어서는 건강이 최고라며 건강하게 잘 지내자고 약속을 했다.

내비게이션에 태평염전을 찍었더니 어느 건물 입구에서 목적지 주변이라며 안내를 종료한단다. 그 건물에 소금박물관, 태평염전이라 쓰여 있다. 박물관치고는 좀 초라하고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쓰여 있으니 들어갈 수밖에.

안에는 소금 종류가 여러 개 있고 상패 인증서 등이 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 문이나 열어 보았다. 일직이던 사람이 문 여는 소리에 놀라 쳐다볼 뿐이다. 염치가 없어 바로 밖으로 나와, 한국에서도 이렇듯 못 찾는 나이가 어느새 되었냐며 우리는 씁쓸하게 웃었다.

태평염전은 6.25전쟁 이후 피난민 구제와 국내 소금 증대를 목적으로 건립되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여의도 두 배다. 염전 안의 염생식물원에는 함초, 칠면초등이 자라고 있고 염전 체험도 할 수 있는데 지금은 겨울이라 할 수 없다. 염생식물원만 한 바퀴 돌았다.
소금박물관은 남한 유일의 석조 소금창고이며 건축 당시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단다. 입장료가 2000원인데 언니 때문에 나까지 경로우대를 받았다.

여기까지 구경했는데 점심시간이 훨씬 넘었다. 점심은 지도로 나와 횟집에서 했다. 1976년 신안 앞바다에서 송, 원대 해저유물이 발견 되었던 곳이 바로 증도 여기란다. 그곳을 가보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언니와 나는 서로 점심값을 내겠다고 실랑이를 했다. 그 사이 남편이 얼른 계산했다. 언니는 언니네 동네에 왔는데 왜 네가 내려고 하냐고 했고, 나는 형부가 운전하는데 당연히 내가 내야 한다고 서로 명분을 내세웠다. 오랜만에 언니와 몸싸움을 하고나니 기분 참 좋다.

나는 남도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생기면 바로 언니한테 전화할 것이고 형부는 기꺼이 운전을 자처할 것이다. 언니와 나는 또 점심값을 서로 내겠다고 밀치기잘치기를 할 것이다. 언니와 나의 이런 몸싸움이 오래오래 지속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