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에서 가장 위대한 군주 한 명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세종대왕이라고 말하겠다. 세종이 이룬 엄청난 업적의 원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가 많다.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소통의 리더십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세종의 일화 몇 가지를 통해서 세종의 리더십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세종 6년에 황해도 사람 조원(曺元)이 자신의 토지 소송이 장기간 지연되자 왕을 비난했다. “지금 임금이 착하지 못해서 이런 수령을 임명했다.” 조원의 말을 어느 노비가 관에 고발했다. 조원은 옥에 갇혔고 그에 대한 엄벌이 주청됐다. 세종은 민원이 방치돼서 억울한 마음 때문에 우발적으로 나온 말이고 그런 수령을 보낸 자신의 탓도 크다고 하면서 조원의 방면을 명했다. 신하들이 처벌을 주장하자, 재론하지 말 것을 지시하며 조원이 세종의 마음을 제대로 모르고 한 말이니 어찌 죄를 주겠느냐고 하면서 신하들을 물리쳤다.

세종은 재위 7년에 "나는 어질지 못하고 일처리에 어두우니, 내 행위 중 분명 하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힘써 나의 허물을 찾아내어 나로 하여금 하늘의 꾸짖음에 반성하고, 올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도우라"고 신하들에게 명했다. 세종 10년에는 어떤 사람이 “지금은 밝은 시대가 아니다”라고 말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세종은 국정을 비방한 것에 죄를 묻지 말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세종 15년에는 경기도 이천의 전남기라는 사람이 “지금의 임금이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 서해도에서도 임금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대하여 세종은 “예부터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원망하는 말을 하기 마련이다. 전남기 또한 관에서 빌려준 곡식의 상황을 독촉하자 생활이 힘들어져 그런 원망하는 말을 하게 된 것일 뿐이니, 나를 상하게 하고 해를 끼침이 뭐가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문제 삼지 않았다. 또한 "나에게 솔직히 말을 한 것을 가지고 죄를 주라 하니, 나로 하여금 아래의 사정을 듣지 못하게 하여 무지몽매함에 빠지게 하려는 것이냐?"라고 소통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천명했다.

한글 창제, 경제 개혁, 과학기술 진흥, 군사제도 정비와 영토회복, 법령 정비 등 실로 한 사람이 이뤘다고 믿기 힘들 정도의 업적을 남긴 성군 세종의 치세를 관통한 것은 소통의 리더십이었다. 세종의 재위기간은 여러 측면에서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혁신과 도전의 시대였다. 당연히 수많은 반대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지만, 세종은 끊임없는 소통으로 반대를 극복했다.

세종실록 일화들을 보면 위민(爲民)이라는 대의가 세종의 리더십 중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제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전제군주라 할지라도 신하들과 민심의 지지 없이 지속적인 혁신의 시도는 불가능하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고나 할까! 위민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는 유교체제에서 백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세종의 정치적 신념 앞에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반대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위민을 향한 세종의 열정과 기질도 적극적인 소통노력이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한낱 독단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세종은 소통을 통하여 자신의 비전을 공유하고 대중의 지성을 결집시켜서 불멸의 업적을 이뤘다. 백성의 대역무도한 말에도 관대함을 보이고 나가서 쓴소리를 권장하는 세종에게 신하들의 직언과 참신한 아이디어가 쏟아짐은 당연했다. 위민이라는 대의와 구체적 실천방법이 소통과정의 자기검증장치로 작용하면서 생산적인 소통이 이뤄졌다. 세종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분야의 국정과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이유다.

리더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리더십을 논할 때 리더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개인적 특성들이 있다. 이 중 목적의식, 복잡한 상황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직관적 판단력, 추진력이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이 세 가지 특성이 소통의 기반 위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일회적인 효과는 있을지언정 지속가능한 힘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세종이 보여준 소통의 리더십은 넓은 도량(度量)에서 나온 것이다. 백성들의 비방과 비판을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호방함, 언로를 활짝 열어서 쓴소리를 통해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겸허함, 반대를 인정하고 소통하면서 화합을 이끌어내는 지혜로움. 가히 범인이 흉내 낼 수 없는 마음가짐이다. 넓은 도량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사명감에서 나왔을 것이다. 사람의 크기는 다른 사람을 담을 수 있는 마음 그릇의 크기이니, 리더의 능력은 소통의 정도로 가늠할 수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