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민  유 성 무

1840년대 아일랜드에서 대기근이 일어났다.  800만 명의 인구 중 최소 100만 명 이상 굶어죽고 100만 명 정도가 해외로 이주했다.  대기근의 표면적인 원인은  주식인 감자의 입마름병으로 인한 대흉작이었다.  하지만 대기근을 초래한 진짜 원인은 아일랜드를 지배하던 영국의 가혹한 수탈이었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밀과 옥수수 같은 곡물수확량이 충분했다.  그 곡물을 지배층인 영국이 수탈하였으니, 아일랜드인들은 감자를 재배해서 연명했다.  감자가 아일랜드의 주식이 되자 다수확 품종인 ‘럼퍼’가 전역으로 퍼졌다.  그런데 럼퍼는 입마름병에 취약했고, 같은 품종 일색이었던 아일랜드 전체가 입마름병에 노출됐다.  대재앙은 결국 획일적인 품종재배를 강제한 수탈에서 시작된 것이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획일성의 위험을 말할 때 흔히 인용된다.  획일성이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획일성은 작은 충격에도 전체를 심각한 위험에  노출시킨다.  자연스러운 상태에서는 획일성이 있을 수 없다.  자연은 다양성을 본질로 한다.  복잡하고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시스템 전체적으로 볼 때는 가장 효율적이다.  다양한 종이 경쟁하면서 환경에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고 진화하면서 생태계를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15세기에 유럽은 중세 암흑시대로부터 벗어나서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 중심에는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메디치 가문은 상업과 금융업으로 일군 엄청난 부를 바탕으로 유럽 최고의 정치력까지 갖게 됐다. 
 

 메디치 가문은 교육기관을 설치하고 출신을 불문하고, 재능 있는 예술가와 학자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유명한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갈릴레오 등이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예술과 학문의 꽃을 피웠다.  다양한 배경과 지식을 갖춘 인재들이 서로 교류하는 장(場)이 활짝 열리자 천년 동안 억압됐던 예술과 과학, 철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메디치 가문과 함께 베네치아, 밀라노 등도 학문과 예술의 진흥에 경쟁적으로 동참했다.  이런 분위기는 유럽 전역으로 전파됐고, 바야흐로 휴머니즘을 중심으로 하는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게 됐다.
 

 메디치 가문의 문예 진흥은 다양성을 장려한 결과로 평가된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소통하면 창의력의 한계는 엄청나게 넓어진다.  우수한 인재들이 열린 장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경쟁과 협력을 하게 되면 창의성의 대폭발이 발생한다.  그 결과 사회 전 분야에서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되면서 사회는 급격한 도약의 기회를 맞는다.  이런 현상을 ‘메디치 효과’라고 한다.
 

메디치 효과는 우리나라와 고대 중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의 황금기라는 세종 시대와 영정조 시대에도 다양한 인재들이 학문을 크게 융성시켰다.   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가 강성하게 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자국이 아닌 타국 출신의 인재들이 많아지자 진나라에서는 타국 출신을 몰아내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에 이방인이었던 이사(李斯)가 유명한 간축객서(諫逐客書)에서 태산불사토양(泰山不辭土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라는 말로 다양성의 가치를 진시황에게 주장했던 것이다.  진나라는 다양한 국적과 신분, 학문, 사상을 가진 인재들이 모여서 치열하게 경쟁과 협력하면서 구축한 힘을 바탕으로 천하를 통일했다.  그런 진나라가 통일 후에 다양성을 파괴하고 획일성을 추구함으로써 불과 2대만에 멸망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자연은 본질적으로 다양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인간세계는 다르다.  다양성과 획일성을 반복하면서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다양성을 통한 생각의 조화와 융합이 이뤄지는 시대에는 사회가 번성한다.  하지만 획일적으로 움직이는 시대의 사회는 결국 쇠퇴한다.  시대를 이끄는 리더십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간세상의 다양성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열린 환경에서만 다양성이 표출된다.  또한 다양성이 한 데 모여서 창의적으로 발현됨으로써 사회가 진일보하는 것은 결코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안목 있는 리더십의 ‘의도된 환경조성’이 필수적이다.  무엇이 의도된 환경조성인가?  다양한 인재들이 자유롭게 모여서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리더십의 존재이유는 오직 사회발전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문제는 너무도 복잡하다.  획일적인 사고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  문제만 더 꼬일 뿐이다.  다양한 생각들이 소통하면서 경쟁과 협력을 할 때만 우리는 아일랜드 대기근을 피하고 메디치 효과를 향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