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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민 유 성 무
며칠 전 국회 법사위에서 의료 영리화를 획책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부결됐다. 해당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법안인데, 왜 법사위에서 이를 부결시켰는지에 대해 전문적 식견이 없는 상태에서 쉽게 이해가 안 된다. 이 법안의 취지가 문제인지, 아니면 법안 자체의 법률적 문제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언론의 해설을 보니, 이 법안에 국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의료 서비스의 공공성을 와해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 내포된 모양이다. 우리 사회에서 국가가 주체가 되어 제공하거나 통제하는 사회적 성격의 서비스에 대한 공공성과 영리성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료 영리화 논란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규제를 최소화함으로써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의료 관련 산업 전반이 발전할 수 있다는 의견이 의료 영리화 찬성 측의 입장인 것 같다. 반면에 양질의 의료 서비스 향유는 국민들의 보편적 권리임에 따라서 의료의 공공성을 해치는 법적 장치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반대 측의 입장으로 보인다. 사회적 서비스의 공공성과 영리성(다르게 말하면 효율성)을 주장하는 양측의 입장은 다 옳다. 공공성과 영리성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 아니다. 사실상 서로 보완적 성격이다. 만성적 적자 구조인 공공 서비스가 오래 갈 수 없으며, 보편적 복지 성격인 서비스를 이익의 잣대만으로 재서도 안 된다. 장기적 전망을 보면서 서비스의 공급자-수요자-통제자의 합리적인 이해관계 조율이 필요하다. 사회적 서비스의 공공성과 영리성 논란의 핵심은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사무사(思無邪)로 귀결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의 의료 시스템이 공공성을 담보할 수 없을 정도로 수익성의 한계를 보인다면 당연히 영리성을 보완해야 한다. 하지만 이도 현재 의료 시스템 전반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거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고 시정한 후에도 효과가 없을 때나 국회의원 몇 명의 동의가 아닌 국민적 합의를 거쳐서 시도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저의에 삿됨이 있는 것이다. 10여 년 전에 출판된 책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에는 인도(印度)의 아라빈드 안과병원 혁신 사례가 나온다. 이 병원은 하루 850명의 극빈자에게 무료로 백내장 수술과 요양을 제공하면서도 이익을 냄은 물론이고, 수입품의 1/50 가격으로 저렴한 인공수정체 등 의료용품을 생산하면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절제되고 분업화된 진료와 효과적인 수술 방법 등을 통해서 공공성을 크게 향상시키면서도, 소득에 따라 차등화 된 적정 진료비 부과를 통해 이익을 시현하고 있다. 이런 기적을 만든 것은 의료행위의 공공성에 대한 성찰, 즉 사무사(思無邪)에서 시작된 진료 시스템에 대한 혁신의 선순환으로 이해된다. 2007년에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는 <식코 Sicko>를 통해서 영리만을 쫓는 미국의 민간의료보험조직인 ‘건강관리기구(HMO)’의 문제점을 고발했다. 영화는 손가락 두 개가 잘린 환자에게 돈에 맞춰서 손가락 한 개만 봉합할 수 있으니 어떤 손가락을 봉합할 것인가를 선택하라고 하고, 돈 없는 사람의 치료를 거부하는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인 미국의 의료 시스템을 조명했다. 우리나라도 오래 전에 시행한 전 국민 의료보험 가입을 초강대국 미국에서 오바마의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2014년에 겨우 불완전하게 실시하게 되었으니, 사회적 서비스의 공공성 포기가 갖는 파괴적 폐해가 얼마나 무서운가? 거대자본이 상수도 등 공공 서비스를 잠식한 중남미의 비극적 사례를 볼 때도, 지속가능한 공공성을 정립하기 위한 사회적 혁신 노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됨을 알 수 있다. 민영화 이후 상수도 요금 폭등으로 빈곤층에서는 세수도 제대로 못하는 사회가 과연 정의로운 세상인가? 이런 사회가 과연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자본의 힘에 공공성을 내주기 전에 사회적 합의와 혁신 노력이 있었을까? 사회적 서비스의 공공성만큼 적정 이윤 확보를 통한 서비스의 양과 질 향상도 중요하다. 다만 보편적 복지 성격의 사회적 서비스는 한 번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경우 다시 돌리기 힘들고, 너무도 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강요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또한 사회가 사무사(思無邪)한 자세로 혁신을 추진할 때 절대 다수의 복리와 새로운 성장의 계기를 만들 수 있기에 한 줌도 안 되는 일부 정치권과 이익집단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도 각종 공공적 서비스에 대한 영리화 또는 민영화 주장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를 주장하는 세력에 맞서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삿됨 없이 혁신을 통해 공공성을 지켜내고 향상시키는 사회적 관심과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다수의 편에 서서 잘못된 사회 시스템을 뜯어 고쳐나가는 공론의 장을 열어나가는 정의로운 언론의 활약을 고대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