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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겸과 도덕적 책무

황만길 지역농업연구원장

명나라 영종(정통제)때 오라이트족(서몽고 지역의 몽골계 부족)의 침입을 받아 풍전풍화의 위기에 처한 일이 있었다. 국경을 넘어온 오라이트군은 곳곳에서 명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파죽지세로 베이징을 향해 진군해 왔다.

급박한 상황에 이르자 결국 50만 대군을 이끌고 황제인 영종이 직접 전쟁에 나섰지만 명나라 군대는 오라이트군의 기습작전에 참패를 하고 토목이라는 성에 머물게 되었다. 수십만 명에 이르는 군사가 성채에 주둔했지만 문제는 물이 없었다.

갈증에 생사를 넘나들던 명나라 군사들은 성채를 급히 나오다가 오라이트군에 의해 수십만의 사상자를 내고 궤멸되다시피 했다.

황제인 영종도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초원에서 오라이트군에 포로가 되었다. 한마디로 대참패와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가리켜 ‘토목의 변’이라고 칭한다.

베이징에서는 후임 황제로 경태제가 즉위했다. 황제를 공석으로 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라이트군은 포로로 붙잡은 황제를 이용해 명나라와 좋은 조건에 협상하려 했으나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면서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새 황제인 경태제가 즉위했으니 포로인 영종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오라이트군은 베이징을 함락하기로 하고 진군했고 명나라 조정은 충신 우겸의 의견에 따라 베이징을 사수하기로 했다. 우겸은 병부상서가 되어 오라이트군을 대파했다. 피해가 커지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오라이트군은 강화를 제의했고 강화협상에 의해 포로가 되었던 영종은 베이징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국가존망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사람은 충신인 우겸이었다. 하지만 경태제가 중병이 들자 무혈 쿠데타에 의해 경태제는 폐위되고 영종이 다시 황제로 복위되었다. 영종이 복위되어 한 일은 나라를 구한 우겸 등을 경태제 세력으로 몰아 체포해 6일만에 베이징의 저잣거리에서 무참히 처형한 일이었다. 역적이 되었으니 우겸의 집도, 재산도 몰수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청렴하게 구국의 일념으로 살았던 우겸의 집에서는 학문을 위한 서적을 제외하고 쓸만한 물건이라고는 없었다. 60평생을 청렴하게 살았던 우겸은 하루아침에 역도가 되어 억울하게 죽었지만 그의 청렴결백함은 오히려 백성들에게 전파되었다.

우겸이 죽은 후 변방에서 외침과 반란 등이 끊이지 않자 영종은 “만약 우겸을 죽이지 않았다면 오랑캐들이 이처럼 준동하지는 못했을 것이다”고 애석해 했다. 사가들 가운데 명나라가 몰락한 것은 우겸 같은 청렴하고 유능한 충신들이 처형당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날 출세를 지향하고 돈을 탐하는 공직자들은 늘어도 우국충정을 갖춘 공직자는 찾기 어렵다며 세상을 탓하기도 한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박근혜 당선인이 총리로 지명했지만 인사청문회가 개최되기도 전에 후보자 스스로 물러났다. 본인이야 장애인이니까 그렇다쳐도 두 아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일과 부동산 투기의혹, 재산 형성의혹, 기득권 옹호판결 등 셀 수 없이 많은 의혹이 불거져 본인 스스로 사퇴한 것이다.

여기서 박근혜 당선인의 인사스타일은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럴 해저드가 워낙 심해 도덕불감증이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음을 개탄하는 것이다. 기득권 보수의 도덕적 해이는 우리 사회의 오랜 고질병이 되었다. 참다운 보수의 핵심가치는 도덕성이어야 한다. 서구사회가 오랜 역사적 선험을 통해 사회의 불문율로 자리잡은 것은 가진 자의 도덕성이다.
미국사회가 지탱되는 힘도 기본적으로 보수세력이랄 수 있는 상류층이나 공화당의 사회적 책무, 국가적 책무가 유지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을 겪은 우리 사회는 보수와 상류층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고 사회·국가적 책무도 회피하기 일쑤다. 매번 인사청문회 때마다 나오는 의혹은 보수세력에게서 더욱 심각한 것이 그 반증이다. 이런 사회에서 우겸과 같은 사람들이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일하기란 쉽지 않다. 처세와 뇌물과 부도덕함이 곳곳에 뿌리내린 작금의 현실은 한국사회가 직면한 해결과제가 아닐 수 없다.

좁혀서 익산을 바라다보면 과연 이것이 예외일 수 있을까? 익산의 보수 기득권 세력은 어떤 양심과 도덕성을 갖추고 사회적 책무을 다하고 있는가 자문해 본다. 시민들은 아우성인데 일부 기관장은 출세와 승진에만 열을 올리고 치적이랄 것도 없는 홍보하기에 날 새는 줄 모르고 있다.
언론에서는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는데 왜 익산시민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왜 인사철만 되면 이런 생각이 더 깊어지는 것일까? ‘시민 모두가 행복한 익산’에서 왜 이다지도 행복하지 않은 시민이 많은지 이 물음의 해답은 과연 누가 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