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 지역농업연구원장

우리는 오랜 협동사회 공동체의 경험이 있었다. 향약, 두레, 계, 품앗이 등이 대표적인 협동적 공동체 모델이었다. 하지만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우리의 공동체 정신을 대표하는 좋은 협동 모델은 사라지고 농촌사회에서 조차 이기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까닭에 과소화, 공동화 되는 지역과 농촌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공동체 사업들이 추진되었고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거둔 모델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과거 우리의 농촌사회와 농업을 지탱하는 힘은 공동체와 협동이었다. 이미 그 속에는 오늘날 협동조합을 대표하는 농협의 정신이나 새롭게 만들어진 협동조합기본법의 가치가 모두 담겨 있었다.

최근 활발한 공동체 지향의 사업들은 모두 무너져가는 지역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자산을 복원해 살맛나는 지역을 만들기 위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개인에게 주는 보조금 위주의 사업이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자조와 자립, 협동의 정신을 무너뜨렸기 때문이었다. 상부상조의 정신을 마을만들기나  다양한 공동체사업, 협동사업을 통해 복원하자는 것이다.

이런 사업은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만들기, 로컬푸드, 슬로시티, 영농조합, 6차 산업, 공공디자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지만 모두다 공동체, 협동정신, 상부상조 정신을 새롭게 이어가자는 가치를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난항을 겪고 있다.

첫째는, 공동체 정신을 이어받기 위한 충분한 준비와 훈련이 안된 상태에서 갑자기 추진된 것이 문제라 할 수 있다. 공동체 지향 사업은 혼자 하는 농사나 장사보다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마을주민이, 지역사회가 더불어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말처럼 쉽거나 아름답기만 한 일이 아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건강한 리더십과 나보다 이웃을 중심에 놓는 정신이 수반되지 않으면 개인 사업으로 전락하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전통적인 상부상조의 정신이 망각 된 채로 갑자기 추진되는 공동체 지향 사업들이 충분한 학습과 준비를 통하지 않고는 인간의 욕망과 욕심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민주적 훈련의 과정은 그런 시각에서 공동체사업 성공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소양일 수밖에 없다.

둘째, 협력적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한데 이런 인프라가 갖춰지기 전에 돈부터 투입되는 오류를 범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돈이 들어오면 으레 개인이 받았기 때문에 공동체 사업조차 개인의 것으로 인식하는 착각에 빠졌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이 연계되고 네트워킹되면서 그 총합이 사업 성공의 밑거름과 원동력으로 기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부족한 인적, 물적 자원은 외부의 역량을 빌리되, 이 외부의 역량을 올바로 사용하고 검증하는 몫은 지역사회의 지혜와 주민들의 협력이 기본이다. 공동체 사업을 추진하는데 협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사업의 성공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셋째, 전문성과 경영능력이 없는데 속전속결로 결과를 내려한 성과주의도 문제라 지적하고 싶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팽배, 도덕성이 상실된 수십 년의 산업화 과정은 공동체 지향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주민의 정신과 체질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 목표이고 핵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 안 된 곳에 돈을 주고 당장 성과를 내오라고 했으니 공동체의 이익은 뒷전이 되기 일쑤였다. 공동체의 가치와 철학이 복원되고 이에 기반 한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갖출 때 성공할 수 있는 것이지 당장 성과가 나오기란 쉽지 않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개인 사업으로 전락할 여지가 있거나 공동체 정신과 가치를 복원하기 어려운 곳에 돈을 주고 사업을 추진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공동체 지향 사업들은 누가 뭐래도 이웃과 더불어 사는 행복한 지역과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다. 욕심과 욕망의 절제 없이는 안 되는 사업이다. 충분한 준비와 학습의 과정, 지역사회와 내외부의 협력적 네트워크, 돈보다 가치와 철학을 소중히 하는 정신,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갖춘 인적 결집이 그래서 중요하다.

도덕성이 붕괴되고 자본이 사람에 우선하는 우리 사회 속에서 공동체 지향 사업들을 왜 추진하는 것인지, 그 의미를 새롭게 하는 일이 들불처럼 일어나야 공동체 사업들은 성공할 수 있다. 그 일을 위한 과제는 나를 버리는 노력과 이웃을 챙기는 자세다.

또한 공동체 사업은 시간을 갖고 함께 참여하는 진지한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이 위에 행정의 체계적 사업추진이 더해지면 공동체 사업의 성과는 절로 오게 된다. 

익산이란 지역공동체의 미래도 결국 거기에 해법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