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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경사

기다림은 행복이다. 기다릴 것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최면을 걸며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려 해도 초조함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왔다. 아침부터 전화벨 소리에 귀를 세웠다. 오전 내내 소식이 없다. 내가 이럴진대 본인은 어떨까. 기다리다 아들에게 전화를 넣었다. 아직 아니란다.

손님이 와서 점심식사를 하러 나갔다. 나는 휴대폰이 없다. 약국을 비운사이 전화가 올 것 같아 빨리 돌아오고 싶은데, 날씨가 좋다며 미륵산으로 드라이브를 가자고 한다. 햇살이 참 좋다. 햇볕 잘 드는 곳에 차를 세우고 음악을 틀고 셋이서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 마음은 온통 약국 전화에 있다.

며느리가 지난 일요일 진급시험을 봤다. 아들과 달라서 잘 봤냐고 묻지도 못하고 애썼다며 맛있는 것 사 먹고 푹 쉬라고만 했다. 근 열 달 가까이 퇴근 후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를 했다. 신혼을 그렇게 보내니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아들과 며느리는 입사 동기다. 신입사원 연수시절에 만났다. 아들은 군대생활을 인정받아 재작년에 시험을 보았다. 떨어졌다. 결혼을 미루며 공부해 작년에 운 좋게 꼴등으로 합격을 했다. 합격했다는 게 중요하지 등수가 뭐 그리 대단하냐며 아들을 많이 띄워 주었다.

아들은 작년 4월 결혼을 했다. 애들 직장이 경제와 신용으로 분리되면서 5급에서 4급 진급시험이 없어질지 모른다고 했다. 시험으로 진급해야지 경력으로 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뿐더러 옆에서 치고 오는 사람이 있어 여자들에겐 불리하다고 했다.

남편은 아들이 결혼하자마자 손자타령을 했다. 나는 1년 시간을 주어 진급시험부터 준비하는 게 낫다고 했다. 어느 것이 우선순위인지 몰라 아들내외에겐 아무 말도 못했다.

가끔씩 남편이 문자를 보냈다. “우리 며느리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 아빠 엄마가 응원 보낸다. 파이팅!” 나는 피로회복제, 집중력 좋게 하는 일명 수능생들이 먹는 영양제를 보내 주었다. 살림살이는 아들이 다 맡아서 했다. 다행히 아들이 진급예정자로 여유가 있어 예민해진 며느리의 감정까지 다 받아주는 것 같았다.

며느리는 웃는 얼굴이다. 그리고 웃는 모습이 예쁘다. 결혼식 때 본 지인이 나에게 한 말이다. “이 집 며느리는 웃고 싶어 죽더만” 이렇게 잘 웃는 성격도 시험 날짜가 다가올수록 야위고 까칠해졌다.

시험이 12시 20분에 끝나는 줄 알았다. 아들 며느리한테 전화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1시가 다 되어도 연락이 없다. 얼마나 못 봤으면 전화도 못할까 불안한 마음이 확 일었다. 겉으론 태연한 척 해보지만 남편이나 나나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1시가 조금 넘어 전화가 왔다. 12시 40분에 끝났단다. 며느리의 목소리가 밝아 합격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발표 일주일을 기다리는데 여러 생각들이 오고갔다. 만약에 떨어지면 잠시 시험을 접고 아기부터 가져야 할 텐데, 합격할 때까지 임신을 미룬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진급시험이 아주 없어지면 안 되는데.

아들에게 전화해 며느리의 컨디션을 물으니 일희일비 한단다. 떨어질 것 같다며 울기도 했단다. 신경 쓰일 것 같아 직접 전화도 못하고 아들을 통해 근황을 묻는 게 고작이다.

울었다는 말에 남편이 전화를 했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예 예 만하더란다. “미현아 너는 웃는 모습이 예뻐. 웃어라, 웃어야 웃을 일 생긴다.” 그리고 이제 스물아홉인데 직장도 있고 결혼도 했는데 시험 한 번 떨어지면 어떠냐며 밥 잘 먹고 근무 잘 하라고 위로해 줬다.

점심을 먹고 막 약국에 들어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떨리는 마음으로 받으니 남편이다. 아들한테 연락 왔는데 좋은 소식 기대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단다. 확실한 연락을 기다리며 마음을 놓지 못했다.

4시가 넘어도 전화기는 잠잠했다. 남편도 기다리는데 한계가 왔는지 약국으로 나왔다. 참으로 긴 하루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며느리의 지금 심정을 헤아리니 내가 더 떨렸다.

5시 가까워 며느리 전화다. 합격이란다. 남편과 나는 눈을 맞추며 만세를 불렀다. 잘 했다. 고맙다. 오랜만에 맛보는 기쁨이다. 붕 떠있는데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며느리는 상위권 합격이라 합격과 동시에 과장 발령이 났다는 전갈이다. 아니 이런 겹경사가!

일요일을 기다린다. 온 가족이 편안하고 기쁘게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한없이 달뜬 마음으로 아들 며느리와의 만남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