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 지역진흥원장

전북형 슬로시티 사업이 예비지구 지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안타까운 것은 슬로시티 예비지구 조성조차 13개 시군에 한 군데씩 배분한 점이다.

슬로시티의 취지에 맞고 그런 인적, 물적 조건과 기반, 철학이 있는 곳을 지정해야 함에도 13개 시군에 하나씩 나눠준 것이 편하지 않다. 진안 안천, 익산 웅포를 비롯해 13개 시군에 한 곳씩 예비지구를 지정했지만 슬로시티의 진정한 의미를 얼마나 인식하고 사업이 추진되는지 걱정도 앞선다.

더구나 전북형 슬로시티는 어떤 목적과 의미를 갖고 추진되며 지역은 어떤 준비를 하고 내용을 채워야하는지 익산을 생각하면 우려도 된다.

익산 웅포도 전북형 슬로시티 예비지구로 지정되었지만 슬로시티의 진정한 의미와, 철학과 정신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염려도 된다.

슬로시티는 인간의 탐욕으로 상실한 인간성, 자연생태, 문화, 역사 및 전통의 소중한 가치를 되살리고 지역에 속한 공동체가 그런 철학과 정신을 실천하는 공동체 지향의 운동이다. 한국의 현실을 빗대 정의를 내리면 산업화, 물질주의의 만연에 따라 내팽개치고 상실한 전통, 정신, 문화역사유산, 자연환경 등의 소중한 존재를 되살리고 인간다움, 환경다움을 찾아나가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돈, 탐욕, 물질에 멍들어 죽어가는 인간의 정신과 자연의 소중한 가치를 인식하고 그런 가치, 철학, 정신에 어울리는 생활이 되도록 실천하는 전통의 회복운동이랄 수 있다. 여기에는 결코 탐욕, 이기심, 물질주의가 우선 할 수 없는 명제가 깔려있다.

일반적으로 슬로시티 운동의 출발지를 이탈리아라고 말한다. 공식 명칭이 치타 슬로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느리게 살자는 뜻을 담고 있다. 물질에 미쳐 돈만 쫓아 살아온 생활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뒤돌아보는 운동이기도 하다.

이탈리아는 1999년부터 공식적으로 슬로시티 운동을 출발시킨 곳이다. 슬로시티 운동의 대표기구는 국제 슬로시티 연맹으로 슬로시티 신청지역을 대상으로 엄밀한 실사를 거쳐 슬로시티를 지정하는데 우리나라는 남양주를 비롯해 8개 지역이 지정되었다.

이런 슬로시티 운동처럼 전라북도도 전북형 슬로시티를 지정하고 추진하겠다는 차원에서 예비지구를 선정하게 된 것이다.

전북형 슬로시티 예비지구 조성은 13개 시군에 나눠주기 식으로 배분했지만 최종 지정까지는 슬로시티 운동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 곳만 지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철저하게 슬로시티의 철학과 정신에 부합하도록 준비하고, 마음을 비우고,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공생하는 지역공동체를 지향하는 곳만 최종 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신과 철학이 없는 곳을 전북형 슬로시티로 지정하는 것은 물질만능주의에 쩔어 있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으로, 슬로시티 운동을 왜곡시킬 뿐이다.

13개 시군에 한 군데씩 지정하다 보니 익산 웅포도 예비지구로 지정되었다. 웅포는 산들강이 어우러지고 역사문화유산이 넘치는 곳이다. 한마디로 인간과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생명의 땅, 자연에서 나는 것 외에는 탐욕이 없던 곳이었다.

사람과 자연이 가장 맑은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웅포는 그런 정신과 문화와 철학을 잃어가고 있다. 생명의 땅을 파헤쳐 불법, 편법, 탈법이 난무하는 골프장을 짓고 물질만능주의라는 프랑켄슈타인을 쫓아가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마디로 슬로시티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진정한 슬로시티는 자연과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하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전통과 문화의 가치를 되살리는 운동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위해 주는 일이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하고 물질보다 정신, 철학이 중요하다는 믿음이 사람들 마음에 넘칠 때 슬로시티라고 할 수 있다.

익산은 철학이 없고 종교는 탐욕에 빠졌다는 말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나랏돈이면 먹고 보자는 종교나 성장 제일주의만을 외치는 종교가 지역에 희망을 줄 수 없는 마당에 슬로시티조차 그 의미를 상실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웅포의 구성원과 그 주변에 있는 관계자들은 슬로시티의 진정한 의미를 새기고 생명, 철학과 정신, 전통과 문화, 역사와 삶의 양식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그런 스스로의 반성이 없는 한 우리가 지향하는 슬로시티는 돈 받아 사업하는 또 하나의 정부지원 사업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과거 남양주를 방문했던 국제 슬로시티연맹 마르코니 회장은 “전통문화를 보전하고 계승하는 자연부락의 모습이 슬로시티를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라고 밝혔다. 

전북형 슬로시티 예비지구로 지정된 웅포의 구성원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슬로시티로 가는 길인지, 그 길을 찾길 희망한다. 잃어버린 우리의 진정한 슬로시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