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 지역진흥원장

업무상 해외에 자주 나간다. 농업인이나 식품관련 종사자 등의 단기 교육연수 프로그램을 기획, 설계, 운영, 평가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보니 전문가로 동행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연수의 내용도 농식품정책, 마을만들기와 도농교류 및 농촌체험관광 등의 농촌지역개발, 6차 산업이나 농식품산업 현대화 및 융복합화, 농업경영분야 등 다양한 영역을 다루게 된다.

올 7월 초에 다녀온 일본 북해도 지역의 연수지는 과거에도 방문한 경험이 있는 곳이었지만 우리 농식품산업 분야에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정리해 본다.

북해도의 지역농협들이 공동출자해 설립한 호쿠렌 펠라이스는 한국의 미곡종합처리장( RPC)에 해당한다. 호쿠렌 펠라이스는 한국 쌀산업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주는 곳이다. 특히 쌀농업 비중이 높고 RPC의 경영안정화와 시설현대화의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의 농업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호쿠렌 펠라이스의 특징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북해도지역의 농협이 공동출자를 통해 설립함으로써 자본금 조달이 용이하고 지역농협의 재정적 부담을 완화한 점이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초기 시설비 등을 공동출자에 의해 조달함으로써 지역농협의 부담을 줄이고, 쌀 수급을 용이하게 한 것이 성과를 내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쌀 가공을 철저하게 식품가공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한 점이다. 원료곡의 입고, 저장, 가공, 관리, 포장, 출하의 전 과정을 안전, 안심, 위생 조건에 맞추고 이력추적이 가능한  시스템을 완비해 소비자 위주의 쌀 가공을 하고 있는 점이다. 도정공장이 아닌 철저한 식품공장이라는 것이다.

셋째, 호쿠렌 펠라이스는 교육기관 기능을 수행한다. 청소년을 비롯해 많은 소비자들이 쌀 가공 현장을 견학해 쌀의 생산, 가공, 출하의 전 과정을 이해하고 밥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체험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노력을 한다.

넷째, 호쿠렌 펠라이스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커뮤니티를 강조한다. 실업육상팀의 운영, 재능기부, 프로야구팀을 활용한 적극적인 홍보와 판촉 등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마케팅을 함으로써 지역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으로 성장한다. 이런 호쿠렌 펠라이스의 특징적인 경영은 한국의 농협 RPC가 나아갈 방향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두 번째 방문지인 삿포로 중앙도매시장은 한국의 여느 도매시장과 유사하다. 일본 도매시장의 운영시스템이 한국 도매시장 설립에 많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몇 가지 배울만한 점이 있다.

우선 시설배치에 있어 매우 효율적이라는 점이다. 많은 관계자들이 출입하고, 수많은 물량의 농수산물이 입고, 경매, 출하되기 때문에 효율적 공간배치를 하고 전용통로를 설치해 혼잡함을 피한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청과동과 수산동을 분리한 후 가운데 통로를 주차, 배송 공간으로 공동 사용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매장과 사무실을 일체화해 업무효율성을 높인 점도 인상적이다.

대형트럭의 입출고를 용이하게 하려고 트럭전용 야드를 설치해 도매시장 내에서 사람, 트럭, 반송차량 등의 충돌이나 혼선을 피한 것도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물이다. 도매시장 내에는 관계자들 외에 출입을 엄격히 통제해 혼선을 막고 일반인들은 전용 견학로를 통해서만 이동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체계적 운영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반송용 운반기구들은 모두 천연가스 차량이라서 친환경적이고 소음이 적어 업무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장점도 보유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도매시장을 학습공간으로 구성해 많은 사람들이 견학, 체험을 하고 북해도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과 친해지도록 하는 노력을 하고 있어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소비자, 학생 등과 유리된 채 운영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좁히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농산물과 식품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문화와 시스템이 정착된 것은 일본의 장점이다.

일본은 지산지소 운동이 자리 잡았으나 우리는 구호로 그친 신토불이조차 사라져 버리고 너도나도 로컬푸드 흉내 내기를 하고 있어 아쉽다. 우리도 우리의 먹을거리에 관한 철학과 정신을 갖고 그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소비자, 자라나는 세대와 공유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서와 토착성에 기반 한 새로운 먹을거리 운동의 전개가 필요하다.

익산도 체계적, 과학적인 먹을거리 운동이 있어야 한다. 학교급식을 제외하고 언제까지 남을 따라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