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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공천

황만길 지역진흥원장

민주당이 기초 단체장과 기초의원 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환영할 만한 일이고 정치혁신 측면에서도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결정이라 하겠다.

민주당은 기초 지자체 선거의 정당공천 폐지 여부를 전 당원 투표로 결정하겠다고 발표한 후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사실상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등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우에도 불구하고 전 당원 투표결과 민주당의 권리당원 14만 7128명 가운데 7만 6370명이 투표에 참여해 투표자의 67.7%인 5만 1729명이 공천폐지에 찬성했다. 당원들만의 투표이기 때문에 기초 지자체 선거의 정당공천 유지 쪽으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은 결과다. 당비를 내는 당원들이기 때문에 기득권 유지 성향이 강할 것으로 예상됐고, 당내 반발도 있어 민주당 권리당원만의 찬반투표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염려에도 불구하고 공천폐지 여론과 기대를 담아 폐지를 선택한 것은 현명한 결정이다.

이런 점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물론 정당정치를 표방하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이 공천을 폐지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논리적으로 합당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기형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정당이 집권을 목표로 하고 집권을 위해서는 기초 지자체 선거 공천을 통해 소속감이 높은 자당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정당정치는 지역주의 정치가 고착화되고, 특정지역을 볼모로 기득권을 오랜 기간 유지하는 기형적 구조라서 국민들이 기초 지자체 선거 정당 공천폐지에 나서라고 촉구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역주의 정치의 병폐가 지자체 선거라도 없어야 한다는 국민적 바람을 담아 기초 지자체 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결정한 민주당 권리당원의 결정은 칭찬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제 새누리당도 민주당의 결정에 답을 내놔야 한다. 새누리당은 한국 정치, 사회경제적으로 보수와 기득권을 대표하는 정당이면서 막강한 권력을 지닌 집권 정당이다. 사실 한국사회는 보수 대 진보개혁의 구도가 6:4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변이 없는 한 기득권 6을 지닌 새누리당 등 보수 세력이 4를 지닌 야권을 이기는 구도가 형성돼 있다. 오히려 이런 구도는 더욱 심화되어 7:3의 사회로 가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은 어쩌면 기적이었고 향후 진보개혁 세력이 집권하는 것 역시 기적이 일어나거나 커다란 변수가 있을 때만 가능할 일이다. 새누리당이 기초 지자체 선거 정당공천을 내려놓는다면 작은 기득권이라도 내려놓는 일이 되기 때문에 환영받을 일이다. 이제 민주당이 결정한 것처럼 새누리당도 기초 지자체 선거만이라도 정당공천 폐지를 서둘러 당론으로 정하고 여야가 합의해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미룰 일도 아니다.

이제 몇 가지 과제가 남는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오히려 공천을 통해 걸러낼 수 있는 형편없는 현역들을 걸러낼 수 없지 않느냐하는 염려를 불식시키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 중요하다. 유권자의 참여와 현명한 정치행위, 바람직한 투표가 공천폐지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정당에서 국민들에게 공이 넘어온 셈이다. 우리 국민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잘못된 정치에 대해 자신의 책임보다는 정치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려는 책임회피 현상이 강하다. 참여하지 않고 무책임한 투표를 하고도 자신의 결정은 정당화하고 정치인만 탓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이고 정치인의 모습은 거울에 투영된 유권자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런 태도는 올바르지 못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인이나 유력인에게 줄대기를 즐겨하거나 이권 청탁을 하면서도 자신은 정치와 무관한 듯 하는 표리부동도 있다. 잘못된 정치의 책임은 유권자에게도 절반이 있다. 이제 정치와 정치인을 욕하는 낮은 수준에서 정치를 올바로 판단하고 정치인을 가늠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높은 수준으로 진화해야 한다. 정치권 역시 정당공천 폐지에 따른 여성의 정치진출, 정당표방제의 세부방식, 기호제 폐지 여부 등에 대한 대안을 내놔야 한다.

필자는 정치가 변해야 세상도 변하고, 정치가 변하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변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염두에 두고 살아왔다. 따라서 정치참여의 중요성에 따라 정치에 관여하고 선거에도 출마하려 했다. 그러다보니 기득권 한 번 누리지 못하고 비판을 받았다. 이제 평범한 자유인으로 살겠지만 적어도 정치를 변화시키고 올바르게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 유권자의 책임의식이라는 무거운 짐만큼은 지고 갈 것이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내 탓이라는 유권자의 책임의식이 정치를 바꾼다. 한국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