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 지역진흥원장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역사는 산자와 승자의 기록이다 보니 죽은 자와 패배자에 관한 기록은 박할 수밖에 없다. 대개 왕조가 멸망하고 새 왕조가 들어서면 전 왕조에 관한 평가는 나쁜 것이 일반적이다. 역대 사서를 보더라도 멸망한 왕조의 마지막 황제와 왕은 폭군이나 무능한 군주로 기록되었다. 새로운 왕조를 세우기 위해서는 명분이 있어야했고 황권이나 왕권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전 왕조의 나라 운영이 엉망이었다고 기록하는 것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에서도 진시황의 뒤를 이은 2세 황제는 폭압과 폭정을 일삼은 폭군으로 기록되었고 당나라의 2세 황제인 양제도 폭군의 대명사로 묘사되어 있다. 백제의 의자왕 역시 세자 시절에 그토록 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방탕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의 왕들은 무능의 대명사가 되었고 연산군은 폭군이었기에 쫓겨난 것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역사가 과장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해도 왕조가 멸망하거나 나라가 무너질 때는 그만한 이유와 까닭이 있었다. 나라 운영이 엉망이거나 시대정신 또는 패러다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임은 분명하다. 그런 시각에서 역사란 죽은 자가 남긴 기록을 산자가 해석하는 일이 될 것이다. 폭군에 대한 재조명이나 새로운 해석도 그런 까닭에 나오는 것이다.

이런 전제를 하더라도 수나라의 2세 황제였던 양제의 폭정은 납득하기 어렵다. 흔히 고구려를 침략한 인물로 기억되는 수양제는 병상에 있던 아버지 문제를 시해하고 황제에 올랐다. 아버지 문제는 수나라를 건국한 후 커다란 치적을 남겨 위대한 황제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런 아버지인 문제를 시해한 수양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버지의 총애를 받던 선화 부인을 자신의 아내로 삼는 일이었다. 그래서 역사서에는 ‘그날 밤 황태자가 윗분을 범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수양제는 동도건설, 운하건설 등의 대공사에 착수했다. 백성의 형편을 살피며 했다면 운하건설은 역사의 치적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운하건설에 수많은 백성이 동원되면서 고향을 등지고 목숨을 잃어야 했다. 당시 운하건설은 황하, 장강 등의 큰 강에서 이어져 나온 지류들을 연결하는 공사로서 매우 바람직한 건설공사였다. 물론 황제의 향락 욕망이나 수왕조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나 농업이나 상업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었고 남과 북을 연결하는 대업으로 훌륭한 치적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백성들을 동원하고 혹사시킴으로서 그 빛이 바래고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

동도건설은 장안에서 낙양인 동도로 천도하기 위해 새로운 궁전을 짓는 공사였다. 무려 매월 200만 명의 백성이 동원된 웅대하고 화려한 궁전건설 공사였다.

수양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공호수와 온갖 화려한 궁전을 산 위에 짓고 향락과 사치에 취해 살았다. 공사현장에는 지쳐 죽어가는 인부들로 넘쳐났는가 하면 만리장성 공사에서는 열흘 만에 100만 명의 인부 가운데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 인해 전답은 황폐화되고 전국 곳곳에 가장을 잃은 비참한 여인과 고아로 넘쳐났다. 심지어 노역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팔다리를 자르는 일도 비일비재했고 이를 가리켜 복수복족(福手福足)이라고 했다.

수양제는 당시 뛰어난 기술자였던 우문개를 시켜 만리장성 이북지역 순행에 나서기 위해 관풍행정이라는 거대한 이동식 궁전을 짓는가 하면 육합성이라는 조립식 성을 만들도록 하기도 했다. 이런 공사에 동원된 것은 역시 가난한 백성들이었다. 수양제의 학정을 보다 못해 측근인 고경, 하약필 등이 진언을 하자 황제를 비방한다며 처형하기도 했다. 여기에 고구려를 정벌한다며 113만 명의 대군을 모았다. 군사들 역시 동원된 농부들이었기에 3차에 걸친 고구려 원정은 말기적 증상이나 다름없었다.

수양제의 폭정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도처에서 봉기했고 이틈을 타 민심을 얻은 이연이 아들 이세민과 함께 당나라를 세우게 된다. 이연과 이세민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가는 곳마다 백성을 위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민심을 얻어 당나라를 개국할 수 있었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역사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치는 어지럽고 남북 적대국면은 장기화되고 있다. 어려운 경제와  서민들의 현실을 지켜보며 역사의 한 장면을 되새겨 보았다. 여야 영수회담을 통해 얽히고설킨 난제들은 한 칼에 해결했으면 한다. 그런 소식은 폭염에 지친 국민들에게 더없이 시원한 소식일 것이다. 백성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숙고할 일이다.